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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탄은 사탄에 의해 유지된다 [사탄을 숨겨주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4 조회수420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루카 11, 15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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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마태, 마르,루카>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마르코 3, 20 - 30>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마태, 마르, 루카>



상기의 성경 본문을 단 이유는 예수님께서 매도를 당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매도한 사람들은 누구일까를 대충은 짐작할 수가 있다.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 이유는 매도 때문인 것이다. 예전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할 때에 반대자들은 우리를 폭력집단으로 매도를 하였다. 그래서 집으로 방문하니 어릴 적 친구들은 피하는데 급급하는 것이었다. 누가 예수님을 매도했는지는 뻔하다. '반대자'다.

예수님께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하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오늘날에도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자기 편을 반대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노선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매도하는 일이 벌어진다. 자기 편의 말은 잘 듣고자 하지만 반대자들의 말은 일체 듣고자 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며 반박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며 예수님을 반대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을 가리면서 어둠을 드리우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악한 어둠은 사탄이 하는 짓이 분명하다고 말할 것이다.

인간은 사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알게 되는지 그리고 악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가 있으며 알게 되는지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인식할 뿐이다. 인간의 올바른 이성은 이를 지각하지만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힌 몰이성은 이를 지각하지 못하고 비난해 대는데 재빠르게 나선다. 마치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즉, '마귀이기 때문에 마귀를 말한다'고 매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에 반박할 수 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사탄이 사탄을 드러내어 붙잡히게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사탄은 사탄을 숨기며 사탄의 나라, 악마의 활동을 은밀하게 뿌리내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마태,마르,루카>]

사탄은 사탄을 옹호한다. 무슨 사탄이 있느냐며 사탄을 숨겨준다. 자꾸 사탄을 거론해서 사탄 자신을 "저를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사탄이 아니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탄이다면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하고 "그분께 마주 왔다"와 같이 필히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악의 세력'에 대하여 반드시 물리치셨다.

다음의 성경 말씀에 이렇게 기록한다.
[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1요한 3,8> ]  사탄은 사탄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사탄은 사탄에 의해서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죄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하느님 계획을 거부하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관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감각을 대부분 상실하였으며, 종교로부터 죄를 분리시키고 종교를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대인들은 죄를 악이 아닌 하나의 불완전한 것으로 고찰한다. 이같은 생각은 확실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이다. 죄가 확실히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을 갖고는 있지만 종교적 차원은 다른 차원들의 기초가 되어지고 이 종교적 차원에서 다른 차원들은 그들 가치의 본연의 규범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가톨릭 대사전 참조>




교리서 309 만일 질서 있고 선한 세계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계시다면 어째서 악이 존재하는가- 절박하고도 피할 수 없으며, 고통스럽고도 신비한 이 질문에 그 어떤 성급한 대답도 충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창조의 선성(善性), 죄의 비극,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계약, 구원을 위한 당신 아드님의 강생, 성령의 파견, 교회의 형성, 성사의 효력으로써, 그리고 자유로이 응할 수 있는 인간을 행복한 삶에 초대함으로써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고통스러운 사랑이 그 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두려운 신비 때문에 이 초대를 회피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메시지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어느 모로든 악에 대한 대답 아닌 것이 없다.


교리서 324 하느님께서 물리적 악과 윤리적 악을 허락하시는 것은 신비이다. 이 신비는 악을 물리치려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혀진다. 교리서 385  ‘악의 신비’(2테살 2,7)는 ‘경외의 신비’로써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계시는 만연되어 있는 악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은총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의 기원 문제를 숙고할 때, 악을 홀로 정복하신 그분께 우리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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