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유래와 의미
인류의 빛 예수님, 모든 민족의 구세주이심 드러내 - 로제르 반 데르 바이덴 작, '삼왕경배', 1455년,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주님 공현 대축일은 강생하신 구세주 예수님께서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보이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2세기 동방 교회에서 유래한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이다. 한국 교회는 사목적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축일을 지낸다. 주님 공현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와 ‘테오파니아’는 ‘드러나게 나타나거나 밝혀지는 것’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하느님의 발현이나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이 용어를 사용해 불렀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 성탄의 의미가 확대되어 드러난 것이다. 동방 교회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게 된 것은 서방의 예수 성탄 대축일이 등장한 것과 같다. 서방에서 동지 축제(태양신 탄생 축제)를 12월 25일에 지냈듯,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는 1월 6일에 축제를 지냈다. 그리스도인들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이 날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현을 기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할 참빛이심을 드러내려 했다. 서방 교회는 4세기부터 주님 공현을 기념했다. 최초로 이 축일을 기념한 것은 361년 갈리아에서 가장 성대하게 공현 축일을 지낸 것으로 확인된다. 동방의 공현 축일이 361년 갈리아에서 전통이 된 것으로 보아, 이 축일의 기원은 로마의 예수 성탄 대축일과 동시대로 여겨진다. 서방 교회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방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동방에서는 공현 축일을 성탄 축일로 지냈다. 동방 교회의 공현 축일이 서방으로 전파됐을 때 의미가 달라졌다.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탄생한 구세주를 경배하려고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한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탄생에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공현 축일에서 강조된 것이다. 또 ‘예수의 세례’와 ‘카나의 첫 기적’을 덧붙여 기념했다. 서방 교회의 성탄 축일이 동방 교회에 도입됨으로써 공현 축일의 본래 뜻은 사라지고, ‘예수의 세례’를 더 기념하게 됐다. 서방 교회들은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기념하면서, 이들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여겼다. 성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공현에는 온 민족의 경배를 기념하는 것으로 성탄과 경배는 이렇게 구별된다. 오늘날 주님 성탄 때의 전례는 동서방 교회들이 ‘주님 탄생’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지만, 주님 공현의 전례는 동방과 서방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서방 교회는 좁은 의미에서 공현 축일에 ‘현자들의 방문’을 기념하고, 주님 세례 축일에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한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주님 공현 축일에 기념한다. 동방박사,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본 최초의 이방인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을 찾아왔다.(마태 2,1-8 참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것은 민족들을 대표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다. 성경에서 동방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최초의 이방인으로 등장한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네 복음서 중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3-6 참조)이 실현됐음을 선포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로서, 임마누엘로서 세상에 왔다. 그러나 헤로데 대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세주가 오심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들과 달리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하러 온 것이다. 점성가들로 생각되는 세 명의 박사는 전승에 따르면 멜키오르, 발타사르, 가스파르로 불린다. 동방에서 온 이들을 요르단,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온 점성가로 여긴다. 점성가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6세기 초부터 그들을 ‘임금’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십자군은 중동 지역에서 삼왕의 유해를 유럽으로 옮겨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에우스토르지오 성당과 독일 쾰른주교좌성당에 안치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 몰약을 선물로 바쳤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그리스도의 신성’, 몰약은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 몰약은 ‘우리의 고통’”이라고 봤다.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를 통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동방박사의 구세주 방문은 유다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낸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6일, 정리=이지혜 기자] [기획] 주님 공현 대축일 의미
예수님 탄생, 모든 민족에게 드러내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 몰약 3가지 예물을 드렸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사진은 동방박사 옷을 입고 예물봉헌을 하고 있는 독일 청년들. CNS 자료사진. 주님 공현 대축일은 별의 인도를 받은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으로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춰짐을 기념하는 날이다. 원래 1월 6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교우가 이날을 경축하도록 하기 위해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지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교회에서 유래했다. 이집트와 아라비아 등지에서 낮이 점차 길어지는 1월 6일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현을 함께 기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참 빛임을 드러내려 했다. 즉 성탄 축일과 공현 축일을 함께 지냈다. 4세기경 동방교회의 이러한 기념이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의미가 변화됐다. 서방교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했다. 곧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탄생에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공현 축일에서 강조됐다. 동방박사는 누구인가? 마태오 복음서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루카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동방박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2,1.2) 여기에 등장하는 ‘박사들’(복수-마고이 magoi, 단수-마고스 magos)이라는 용어는 현자 또는 꿈의 해석자라는 뜻이다. 수세기 후 점술이나 마술 등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일반화 됐고, 예수의 활동 당시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성향을 지닌 이들과 사기꾼 마술가로 구분됐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천문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해, 별이라는 하느님의 자연 계시를 통해 유다인들보다 먼저 예수의 탄생을 알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로써 이날 전례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빛으로 널리 계시됐다는 내용이다. 구약의 독서를 통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신약에 와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방교회의 첫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마고스’를 왕들이라 설명했고, 6세기 유럽에서는 이런 전통을 계승하고 보완해 ‘마고스’를 왕으로 추대했다. 이후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발이라는 삼왕의 이름까지 붙여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황금, 유향, 몰약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 동방박사를 다룬 많은 작품들에서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숫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가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 몰약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에 준해서 이들의 숫자를 셋이라고 간주했다. 동방박사의 예물봉헌은 임금께 드리는 경의의 표현이며, 그들이 가져온 선물은 그리스도 신비의 세 가지 요소를 가리킨다. 황금은 만왕의 왕인 예수의 왕권을, 유향은 대사제로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몰약은 장례예식에 쓴 약물로 예수 수난의 신비를 의미한다. [가톨릭신문, 2019년 1월 6일,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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