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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말씀] 죄와 선행 - 고찬근 루카 신부님
작성자권영화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18 조회수434 추천수4 반대(0) 신고
 명동거리 한복판에는 '불신지옥'이라는 시뻘건 글씨의 피켓이 서 있습니다. 일종의 협박입니다.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불가마 찜질방에 들어가서도 "시원하다. 시원하다." 한다고 하느님께서 지옥운영을 포기하셨다는 소문도 있는데 말입니다. 옛날 영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어떤 사람이 호기심에 점집을 찾아가 손금을 보는데 점쟁이가 놀라면서 "당신은 살인할 손금을 가졌소."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던 사람인지라 손금을 본 후 무척 괴로워하며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어느 날 다툼 끝에 그 점쟁이를 죽이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죄만 자꾸 말하고 죄를 두려워하고 있으면 오히려 죄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불행한 일을 계속 걱정하고 있으면 그 걱정되는 현실을 이미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선(善)을 희망하고, 선행을 하고, 긍정적으로 용서하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산다면 이미 천국과 구원과 영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을 천국처럼 살다가 마지막 날 천국을 희망하며 평화롭게 죽는다면 숨이 멎는 순간의 그 평화가 사진처럼 찍혀져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요? 반대로 늘 남을 부정하고 단죄하고, 악행과 어둠 속에서 오늘을 지옥처럼 살다가, 천국을 희망하지 못하며 절망 속에 죽는다면 숨이 멎는 순간의 그 절망이 사진처럼 찍혀져 영원히 가는 것이 아닐까요? 지옥은 절망하는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는 불행이며, 천국은 희망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하느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삶 자체가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행을 합니다. 악행을 한 사람은 악행이 드러나지 않게 어둠 속에 머뭅니다. 악행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그래서 어두운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자비롭지 않으니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시고 벌을 하시다가도 쉽게 마음을 돌리시는 분(요나 4,2)입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 너무나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창조된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행할 때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신앙을 택한 것이 아니라 선행을 많이 하려고 택했습니다. 혹시 죄가 있으면 그 죄를 후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선행을 더 많이 하면 됩니다. 신앙을 권하면 보통, 죄가 많아서 나중에 믿겠다고들 합니다. 아닙니다. 죄가 많으니 빨리 신앙을 가져서 선행을 많이 하여 그 죄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작품인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당신 작품인데 미워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귀한 당신 작품들인데 십사만 사천 명만 구원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용서받았고, 선행하며 살도록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 << 머 무 름 >> ------------------------------

 "어떤 사람은 평생토록 도끼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나무 한 그루 배지 않습니다.
나무를 밸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몇 번 휘둘러 나무를 쓰러뜨립니다.
이 도끼가 바로 재량입니다."

 - 암모나스 아빠스 -

----------------------------- << 묵 상 >> -----------------------------------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던 여정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쌓여가는 실망과 울분을 견디다 못해
 땅이 꺼진 것같은 공허감이 나를 채워가고 있을 때 뭔가에 신나서 유별나게 굴던
 친구를 쫓아갔다.
   '내가 이렇게 슬픈데 네가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니?' 더이상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평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아니었는데도 그 친구의 집에까지 쫓아
 가게 만들었고 교회 주일학교에까지 쫓아갔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또다시 펑펑 울어야 했지만 그 눈물은 사랑의 눈물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시고 바른
 길에 서 있도록 나를 부르시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의 하느님은 그렇게 나를 찾으셨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와 그 울타리 안에서 나의
 하느님을 찾고 있다. 비록 세월앞에서 생명을 다하는 육신안에 갇힌 영혼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매우 행복한 세상을 보았고 나 또한 매우 행복한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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