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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남(Exodus)의 여정 - 3.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1 조회수542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2.3.21 수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창세12,1-4 요한17,20-26

 

 

 

 

 



떠남(Exodus)의 여정

 

 

 

 

 



오늘은 ‘떠남’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고맙게도 오늘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미사전례의 1독서와 복음,

그리고 식당독서의 성 그레고리오 대종의 대화집2권 37장의 주제가

‘떠남’이란 주제와 일치합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떠남의 여정’은 ‘하느님을 찾는 여정’이요

‘비움의 여정’이자 ‘일치에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참 어렵고 중요한 게 잘 떠나는 것이요 제 때에 잘 떠날 때 아름답습니다.

 


그림으로 말하면 끝맺음 단계가 떠남인데

아무리 인생 그림 잘 그렸어도

떠날 때 잘 떠나지 못하면 인생 그림 망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잘 떠나 유종의 미를 거둘 때 아름다운 삶의 그림입니다.


하여 제가 요즘 자주 묵상하며 피정자들과 나누는 자료가 있습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인생을 하루로 압축해 지금 내 나이로 하면 몇 시쯤 일까 하는 묵상입니다.

오전 6시에 태어나 해가 지는 오후 6시를 세상을 떠나는 죽음이라 생각할 때

과연 내 나이는 지금 몇 시쯤에 위치해 있을까요?


막연히 생각하던 죽음의 떠남이 얼마 안 남았음을,

하여 잘 떠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새로이 할 것입니다.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하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의 기억도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기쁩니다.

제 집무실에 선물 받아 얼마 동안 모셨던 성모자상을

존경하는 분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저절로 사랑에서 솟아난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선물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참 기뻤습니다.

 


선물한 후 성모자상이 놓여있던 빈자리가 저에겐 깊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순간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불가의 말씀이 언뜻 스치면서

텅 빈 충만의 자유와 기쁨을 맛봤습니다.

없었던 것이 선물로 있다 또 선물로 떠났으니 본래 그 자리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없던 존재가 선물로 세상에 주어져 있다가

언젠가는 선물로 주님께 봉헌되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떠남의 여정에 충실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 예수님, 베네딕도 떠남의 모범입니다.


세분 다 하느님만 찾는 삶의 여정이었기에 떠남의 여정에도 충실했고

더불어 주님과의 일치도 깊어졌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을 살펴봅시다.

오늘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떠남이 참 장엄한 아름다움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군소리 없이 순종하여 길을 떠납니다.

다음 담담한 묘사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이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일흔 다섯에 길을 떠났으니

영원한 청년 아브람입니다.


또 주님의 명령에 군말 없이 순종하여

외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봉헌하기 위해 떠나보낼 때의 모습(창세22장)은

얼마나 큰 충격인지요.


죽을 때까지 떠남의 여정에 충실했던,

본래무일물의 진리를 깊이 깨달았던 떠남의 사람 아브람이요,

믿는 이들 모두에게 복이 된 아브람의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고별기도(요한17장) 중 일부입니다.

자신을 지상에 파견하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모든 일을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자기 사람들을 계속 보호해 주십사고

기도드립니다.

 


특히 오늘 복음은 믿는 이들 모두가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역설적으로 떠남과 함께 가는 하나의 일치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떠남에 이은 부활의 도래로 인해

믿는 이들의 하나의 일치는 더욱 커지고 깊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은 매일의 성체성사 은총을 통해

우리의 떠남의 여정에 늘 함께 하셔서

우리의 일치를 촉진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입니다.

별세는 지상에서 마지막 떠남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죽음을 맞이함으로 아름답게 세상을 떠난 성인입니다.

 


성인의 전기를 읽으며 깨달은 점 역시

하느님을 향한 떠남의 여정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로마로, 로마를 떠나 엔피테로, 엔피테를 떠나 수비아꼬로,

수비아꼬를 떠나 어느 수도원의 원장으로, 원장직을 떠나 몬테카시아노로,

그리고 오늘은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 가는 별세 축일입니다.



마지막 떠남의 죽음을 앞둔 성인의 감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분은 임종하시기 엿새 전에 당신을 위해 무덤을 열어두라고 명하셨다.

  곧이어 그분은 열병에 걸리셨고 심한 열로 쇠약해지기 시작하셨다.

  병세는 날로 심해져서 엿새째 되던 날

  제자들에게 당신을 성당으로 옮겨달라고 하셨다.

  그분은 거기서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영하심으로써

  당신의 임종을 준비하시고,

  쇠약해진 몸을 제자들의 손에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시었다.’

 (전기37장2절)

 


참 장엄하고 거룩한 떠남의 죽음입니다.

어느 고승의 죽음보다 감동적입니다.


계속된 지상에서의 떠남의 여정이 마지막 죽음의 떠남을 통해서

주님과 일치함으로 떠남의 여정은 완성됩니다.


이런 성인처럼

우리 역시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해달라고 끝기도 강복 때 마다 기도합니다.

 

베네딕도의 떠남의 여정이 상징하는바 우리의 내적여정입니다.


밖으로는 늘 그 자리의 정주의 생활이지만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내적여정은

바로 떠남의 여정이자 비움의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나로부터 떠나는 비움의 여정 중에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끊임없이

나로부터 떠나는 비움의 내적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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