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짐이 된다 [중상모략의 덫]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3 조회수439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요한 7, 25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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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사이에서는 예수님을 두고 수군거리는 말들이 많았다. “그는 선한 사람이오”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오. 그는 군중을 속이고 있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요한7,12>

악인들은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지혜서  /  제1독서>



축제가 이미 중반을 지날 때,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셨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놀라워하며,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경을 잘 알까?”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누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만 하면, 이 가르침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요한 7, 15 - 18>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님께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선한 사람이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군중을 속인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대한 분별에 대하여 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만 하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혹은 아닌지를 식별할 수가 있다는 가르침을 주신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세상 안에 있지 않다. 다시말하면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실행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일차적 원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은총이 먼저다는 뜻을 말한다.

그러나 '세상 안에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의 뜻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뜻은 세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며 이는 곧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은 없다라는 것을 또한 분명하게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때문에 인간의 뜻이 형성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세상의 지배 안에 있을 뿐이다.

세상 안에 있는 사람은 군중들 앞에서 소리치기 때문에 군중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 수 있으며 세상 안에서는 서로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세상 안에 있는 사람은 볼 수는 있겠지만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 안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지배를 받으면서 언제나 세상적으로 말한다. 인간적으로 말할 수 없다. 만일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세상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는 세상 중심이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하느님 중심은 그와 반대다. 세상적이기 보다는 인간적이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을 벗어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세상의 시각을 가진 이들은 하느님의 시각을 배우지 못한다. 깨닫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가 없다. 세상의 시각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안에 있는 사람은 세속적인 시각으로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짐이 되어진다. 심하면 남들을 '속이는 덫'을 놓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기도 한다. 눈을 속이는 덫은 덫을 놓는 이들에게 더 강한 어둠의 덫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어진다. 악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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