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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난의 때,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순종]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4 조회수515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요한 12, 27 - 28>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십자가의 수난을 앞둔 마음입니다. 인간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이때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당연히 가지게 됩니다. 십자가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심정을 비웃을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그는 모진 사람이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를 위하여 왔다고 하시는 분의 비장한 마음에서 참으로 아버지에 대한 순종의 진가를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이같은 순종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봅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순종에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세속적인 고난의 시련을 두고서 이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고 해서 순종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내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순종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독서의 히브리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 5, 8) ]에서 보면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다음에 순종을 배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생에서의 고난과 신앙에서의 고난은 엄밀하게 말하면 다르다 하겠습니다. 예를들어서 인생의 고난 20년이라도 신앙의 고난 10년에 비하면 신앙의 측면에서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생 고난 20년은 신앙 고난 1년 보다도 못한다고 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는 무슨 말씀일까요. 먼저 고난에 대해서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겪는 고난'은 어디에서 부터 오는 것일까요. 삶의 인생에서 겪는 고난이 아닌, 신앙의 삶에서 겪는 고난은 '말씀'에 대한 믿음의 순종에서 비롯되어 집니다. '말씀에 대한 실행'이 없다면 정녕 고난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실행하지 않는 곳에 고난의 시련을 겪을 수 없습니다. 실행에 뒤따르는 것이 고난이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의 삶에서 '믿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겪습니다. 시련을 겪음으로써 믿음이 단련되어 집니다. 경험한 사람들은 바로 이해가 되겠지만 경험하지 않은 대다수 이들은 이해가 힘들다 봅니다. 경험한 사람도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시련을 겪게 될 때에 자신의 믿음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즉, 시련에 의해서 주저 앉으면 믿음이 작기 (혹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련에 의해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 때문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그 믿음'은 참으로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믿음'이 아니다면 시련의 고난에 부닥치면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참으로 순수하다면 그 믿음은 어떤 시련의 고난에서도 반드시 이겨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 입니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믿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순교는 그래서 일어나며 믿음이 순수하지 못하면 결코 순교할 수 없다는 것까지도 알게 되어 집니다. 성경은 시련을 통하여 믿음이 단련된다고 기록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는 의미는 말씀에 대한 순수한 믿음에 바탕의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그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믿기는 하지만 그 믿는 바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따라서 말씀의 실천을 행하는 가운데 고난을 겪는다 하여도 믿음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을 두고 '순종한다'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말씀의 실천이 아닌 단순한 인간의 이념에 따른 행동주의는 '순종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겠습니다. 

행동하는 이념(양심)과 행동하는 신앙(믿음)은 분명히 다릅니다. 먼저는 말씀에 대한 믿음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상관없는 '이념의 율법화'(교조화)는 믿음의 실천과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이념의 율법화는 이념주의자들에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이념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념이 율법화가 되는 것은 이념의 율법주의자들, 이념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어 지는 일입니다. 순종과 무관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의 이념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념을 실천하는 것은 순종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실천'에서 고난의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같은 고난을 겪음으로써 '믿음의 순종'을 배우게 된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말씀(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 이념이나 거짓 메세지를 따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는 뜻으로 예수님과 그리고 복음과 일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겪는 고난의 때,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하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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