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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행복했던 2012년3월24일 오후 - 3.2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5 조회수43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2.3.25 사순 제5주일 예레31,31-34 히브5,7-9 요한12,20-33

 

 

 

 

 




참 행복했던 2012년3월24일 오후

 

 

 

 

 



참 행복했던 어제 오후의 일기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저의 수도승 삶 중 행복한 시간 중 하나는

두주가 끝나는 토요일 오후에 삭발을 하는 시간입니다.

벌써 신학교 졸업 후 25년 째

두주가 끝나는 토요일 삭발을 할 때 마다

꼭 두주 단위로 사는 느낌입니다.

또 삭발 후는

초발심의 자세로 새로 시작하는 것 같아 참 홀가분하고 자유롭습니다.


이어 두 자매의 면담성사가 있었습니다.

 

“자매님, 기쁘게 감사하며 활력 있게 사십시오.

  그래야 왕따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력적이라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삽니다.

  어둡고 우울하면 만만하게 여겨

  건드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왕따 될 수 있습니다.

  악은 어둡고 우울할 때 소리 없이 침투합니다.”

 


자매의 어둡고 굳었던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변하니 참 보기 좋았습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웃는 얼굴은 누구나 예뻐 저절로 복이 들어옵니다.

 


“자매님의 고통과 시련은 자매님의 삶을 깊게 합니다.

  자매님의 노래도 예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목소리도 삶과 더불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한,

어느 성악을 전공한 자매에 대한 격려의 조언이었습니다.


두 자매들과의 면담성사 후

수도형제들과 함께 저녁성무일도를 노래로 바친 후

함 세웅 신부님이 계신 청구본당에 사순 특강 차 외출했습니다.

 


주차장에서 떠나기 직전

참 고맙게도 한 착한 자매의 차로 화랑대역까지 와서

즉시 지하철 6호선을 타고 청구역에 내리니 7시10분 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가 타 주는

500원 짜리 향긋한 인스턴트커피도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8시 강의 까지 저녁식사하기 안성맞춤의 적당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소박해 보이는 음식점이 있어 들어가 5000원 짜리 된장국을 시켰습니다.

 

마침 손님이 없어 조용한 분위기라 마음도 편안했습니다.

밥, 된장국, 깍두기, 김, 버섯무침, 콩 자반 등

아주 정갈한 식탁이었습니다.

여유 있게

모두 남김없이 말끔히 먹은 후 그릇들은 보기 좋게 포개 놓았습니다.

 


“아휴, 배고프면 말씀하시죠.”

 

잘 포개 되어 정리된 그릇들을 보며

웃으며 말하는 자매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마침 옆 자리에 노동자 차림의 남자와 아기를 안은 젊은 부인이

사이좋게 들어와 식사를 기다리며 아이의 재롱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거친 얼굴과

아이의 순수한 고운 얼굴이 역시 잘 조화된 따뜻한 분위기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란 말은

바로 저런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큰 행복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복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성당에 도착한 후 잠시 총회장과의 대화 중 특강을 들으러 오는 분들이

옆문으로 들어올 때 마다 계속 미소를 띠며 눈을 맞춰 인사하는

총회장의 배려 또한 따뜻했습니다.

 


토요 특전미사를 드리는 신부님의 열정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미사 때 마다 독서는 독서자와 전 신자들이 함께 낭독하고,

복음 역시 신부님과 함께 소리 내어 읽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해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좋아한다 합니다.

 

또 강론 때 독서와 복음에 대한 신부님의 해설과 강론도 충실하시고

미사를 마친 후에는 성경을 꼭 한 장 씩 읽는 데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열왕기로 넘어갔다는 어느 형제의 자랑이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강의를 듣는 분위기도 꼭 따뜻한 가정 같았습니다.

 

신부님께서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경청하셨고

끝난 후에는 저 또한 신부님과 함께 문 앞에 서서 참석했던 분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성당 강의 차 이렇게 친절과 성의를 다했던 분은

함 세웅 신부님이 처음입니다.


열정, 근면, 충실, 정의, 용기 모두를 갖춘 참 다운 사목자이셨습니다.

 


강의료가 들은 봉투에 친필로 정성껏 쓰신 ‘감사합니다.’라는

단아한 필체가 마음속에 그대로 각인되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두 착한 부부가 저를 수도원까지 태워다 주었고

저는 이 두 부부에게 책 한권과 배 즙 1박스로 선물하고 강복하며

사랑을 나누니 가슴 가득한 행복감이었습니다.

물론 신부님에게도 책 한 권과 배 즙을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실천의 동사입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합니다.



어제 어느 자매가 들려 준 예화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딸이 영세 받도록 설득하는 남편에게 딸은 아버지께 영세 받으면

뭐가 좋은가 물었다 합니다.

즉각적인 남편의 다음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나처럼 된다.”

 


얼마나 자부심 넘치는 말인지요.

꼭 ‘와서 보라.’는 예수님의 당당한 모습이 연상되는 어투입니다.


예전엔 실의에 빠져 폭력적이고 나태했고 무기력했는데

영세 받은 후 지금까지 3년 동안 술, 담배를 끊었고

열심하고 성실한 삶으로 바뀐 남편이요

이런 삶을 보아 온 딸이었기에 그대로 수긍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어제 읽은 신영복의 그림 사색(한겨레27면)도 인용합니다.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먼 여행이 그것이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이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하다.’

 


바로 발 좋은 사람이 사랑 실천의 수행자들입니다.



수행자들은 수도원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제가 인용한 위의 모든 분들이 바로 사랑 실천의 발 좋은 수행자들입니다.

참으로 행복했던 어제 오후의 사랑의 체험들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행복한 오후가 아닌 행복한 삶이 되겠습니다.

 

 

 

 

 



첫째, 인생은 순종의 배움터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삶은 순종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순종을 배워갈 때 익어가는 행복한 삶입니다.

모든 계기를 순종의 계기로 삼을 때 인생에서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역경이나 시련도 순종의 계기로 삼을 때 축복으로 변합니다.

축복으로 변화시키는 마법과 같은 순종의 은총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순종의 삶은 그대로 순교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순종의 자리 바로 거기에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이런 순종의 삶만이 행복한 삶을 보장합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궁극의 대상은 주님이십니다.

 

 

 

 

 




둘째, 인생은 섬김의 배움터입니다.

 



비단 분도수도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이 인생도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도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을 섬기기에 앞서 이미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이십니다.

막연한 섬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님을 따름으로 표현되는 섬김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모든 수행들은

그대로 주님께 대한 섬김의 표현입니다.

 


주님 계신 곳에 주님을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주님이 아니라

섬김의 삶을 사는 지금 여기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길 때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섬기고 존중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내 운명의, 책임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자발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이 그대로 섬김의 삶입니다.

 


이런 섬김의 삶만이 행복한 삶을 보장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궁극의 섬김의 대상은 주님이십니다.

 

 

 

 

 




셋째, 인생은 새 계약을 실천하는 사랑의 배움터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계약은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우리 가슴에 부어지고 마음에 새겨진

새 계약인 사랑의 이중계명, 사랑의 법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 수 있어도

가슴은, 무한한 가슴은 사랑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보라,…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은혜로운 미사를 통해 그대로 실현된 예레미야의 예언입니다.

 



우리 가슴에 부어지는 사랑을,

우리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이중계명, 새 계약을

미사 때 마다 새롭게 확인하는 우리들입니다.

 



가슴 좋은 것보다 발 좋은 것이 좋습니다.

 


가슴에 가득한 사랑을, 마음의 새겨진 사랑의 새 계약을

발의 실천으로 살라고 주님은 우리를 삶의 현장에 파견하십니다.

 


이런 사랑 실천의 삶만이 행복한 삶을 보장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궁극의 사랑의 대상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으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행복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궁극의 대상은 주님입니다.



섬기는 삶을 살 때 행복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궁극의 대상은 주님입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 때 행복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궁극의 대상은 주님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새로이 우리 가슴 안에 당신 사랑의 법을 넣어주시고,

우리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시어

순종과 섬김, 사랑 실천의 삶에 항구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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