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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6 조회수936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3월 26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Lk.1.38)



제1독서 이사야 7,10-14; 8,10ㄷ
제2독서 히브리서 10,4-10
복음 루카 1,26-38

알라딘과 요술램프 이야기 아시죠? 아마 다들 내가 이 램프를 가지게 되면 무슨 소원을 빌까 라는 상상 한 번씩은 해보셨을 것입니다. 로또 당첨, 국회의원 당선, 아들딸이 공부 잘 하는 것, 인기 연예인이 되는 것, 혹시 모르겠습니다. 지구 정복 같은 허황된 꿈을 상상하실 지도요.

아무튼 이렇게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내게 찾아온다면 제대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어떤 사람이 길에서 우연히 램프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먼지를 닦기 위해 문지르자 정말로 요정이 나와 말하는 것입니다.

“램프에서 꺼내 준 보답으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지.”

이 사람은 신중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잠깐 기다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램프의 요정은 “남은 소원 두 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이가 없었지요. 요정이 장난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장난치지 마!”라고 말했답니다. 이에 요정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앞으로 하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방금 말은 없던 걸로 해주세요.”

그러자 요정은 방긋 웃으면서 “세 가지 다 이루어졌다.”라고 말한 뒤에 사라졌다고 하네요.

세 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졌나요? 말한 대로 이루어지기는 했지요. 대신 중요한 순간에 쓸데없는 말만 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중요한 순간에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주님께 그러합니다. 주님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 보다는 이 세상의 일에 집중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데도 순간의 즐거움과 쾌락을 찾고 있는 우리들은 또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지요. 여기서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들은 성모님을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고를 우리가 듣는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따지지 않을까요?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꼭 필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씀, 꼭 필요한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평소 주님과의 대화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그 뜻에 철저히 순명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주님의 뜻을 절대 알 수 없으며, 지금 내가 해야 할 말과 행동 역시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똑바로 말하고, 똑바로 행동하기 위해서…….

 

커다란 문도 작은 경첩에 의해 움직인다. 인생을 문이라고 한다면, 마음가짐은 경첩이다(아서 칼리안드로).


저의 휴대전화. 요즘의 스마트폰보다 더 스마트합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아주 충실합니다. ㅋㅋ



휴대전화
 

며칠 전 강의를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휴대전화를 두고 온 것이 생각난 것입니다. 순간 망설였지요.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편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니까요. 제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전화번호가 없어서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어도 연락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의시간에 혹시라도 늦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떠났습니다. 또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지요.

전철을 타고 가면서 평소처럼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보통 강의를 가면서 강의를 듣는 분들을 떠올리며 묵주기도를 봉헌하거든요. 저의 부족한 강의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묵주기도 5단을 다 바치고 난 뒤에, 문득 휴대전화가 오히려 없는 편이 더 낫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와 문자메시지 소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커다란 방해가 되곤 하지요. 그래서 묵주기도를 봉헌할 때에도 한 두통의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와서 집중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휴대전화 자체가 없으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롯이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생기는 좋은 장점이 또 있더군요.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생기는 것입니다.

‘시간을 보니까 조금 강의에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강의를 부탁한 신부님께 어떻게 연락하지? 혹시 그 신부님이 내게 연락을 했는데, 내가 받지 않아서 애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휴대전화가 있을 때에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없으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기회에 없애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동창신부가 이렇게 말하네요.

“너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연락하고자 하는 상대방이 불편하잖아. 이게 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 아냐?”

맞더군요. 그래서 없애지 않고 그냥 가지고만 있으렵니다. 대신 어떤 일에 집중할 때에는 휴대전화를 꺼놓고 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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