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8 조회수533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추우시죠?

강론하기도 좀 미안합니다.

고백성사도 한 시간 반 정도 보았는데 고백성사 보면서도

‘많이 춥겠다~ 강론을 하지 말까! ’

여러분들 생각해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짧게 하자!’

그런데 저는 짧은 것도 다른 신부님의 세 배입니다.

안 하려면 아예 안 해야 되는데 짧게 하려고 애를 써보겠습니다.

 

 

그저께 성체 대회 있었던 것 아십니까?

성체대회 때는 4천 명 정도 되는 신자들이 왔지요.

그 때 오신 분들 중에 다시 오신 분도 있겠지만

이틀 만에 다시 오기가 어려워서 못 오신 분도 많이 계십니다.

 

매괴 중고등학교에서 체육관을 짓고 있는데

이달 말에는 공사가 끝이 난다고 하니까 잘 하면

11월 ‘기도 찬미의 밤’ 에는 그곳 강당에서 1부, 2부, 3부...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11월은 긴 시간을 견디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겨울에는 밑에서 칼바람이 몰아치면 살이 에이듯 춥습니다.

저쪽 끝에다가 팬스를 치고 ‘어떻게 겨울을 한 번 버텨볼까~’

했는데 제가 자신이 없어가지고...감곡신자들도 걱정입니다.

 

 

다음 달 부터는 강당에 내려가서 하던지~

공사가 완공이 안 되면 예전처럼 성당, 교리실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성모님, 우리 성당이랑 식당 채울 만큼만 보내주십시오.’

참, 안타깝지요.

 

 

여러분들은 이곳에 오기까지 그 출발점이 있었지요?

그 출발점은 아마 집이거나...또는 집이 아닌 분도 있을거예요.

집에서 출발해서 가는 방향을 잡을 때 그곳이 어디였어요?

충청북도 감곡매괴성모지 성당을 방향으로 잡았을 거예요.

 

또 여기에 온 목적이 있었을 거예요.

오늘 이곳에 와서 성모님 만나고, 김신부 만나서 강론도 듣고,

미사 참석하고, 성사도 보고, 전대사도 받고 ....

몸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또 우리 모두 십자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우리 모두 여기에 오실 때

출발점이 있고, 방향이 있고, 목적이 있었을 겁니다.

 

이 세 가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곳에 왔겠지요.

아니면 헤매고 있을 겁니다.

 

치매환자, 건망증 환자들은 길을 나서고도 어디로 갈지 몰라요.

 

제가 어느 시골본당에 있을 때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치매가 왔어요.

아무리 의사라 하더라도 뇌가 망가져서 치매가 오고

건망증이 심하면 길을 나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요.

이 의사치매환자가 아들집엘 갔는데 엄마가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 도착하셨냐?”

“아니요.?

“아니, 아침 일찍 나가셨는데 아직 도착 안 하셨어?”

아침 10시에 나와서 어디로 갈 지 몰라서

차부 안에서 서성이고 있는 거예요. 목적지를 잊어버렸으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신자로서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맨 날 그 모양, 그 꼬라지야~

우리는 세상길은 참 잘 찾아요.

그런데 왜 신앙의 길은 못 찾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년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영적 성숙을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신앙의 출발점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고, 그 신앙의 목적지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출발점과 방향과 목적을 모를 때는

첫 번째, 자유롭지 못해요.

두 번째, 아무리 레지오고 뭐고 오만 봉사를 다해도 마음에 평화가 없어요.

세 번째, 기쁨이 없어요.

네 번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늘 불편하게 느껴져요.

다섯 번째, 늘 두려워요.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 뻔한데 이러다가 벌 받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와요.

 

 

요한복음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느님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성령님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성모님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자유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 번째, 예수님을 받아들여야지요.

 

예수님 받아들이는 게 뭡니까?

첫째, 교리를 받고 믿어야 되요.

내세에 대한 것을 믿고, 상선벌악을 믿어야 되요.

이 세상 착하게 살면 하느님 상 주신 다는 것, 믿어야 되요.

이 세상 못되게 살면 벌 받을 거라는 것을 믿어야 포기할 것을 쉽게 쉽게 포기하고 살아요.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을 믿어야 되요.

 

그게 바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첫 번째 모습이에요.

 

두 번째,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되요.

예수님께 몸담는다는 그 뜻은 예수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여야 되요.

 

세 번 째, 늘 예수님을 배워야 되요.

교리 여섯 달 받고, 세례 받은 다음에 땡~치는 사람들 많아요.

우리가 이 작은 머리로 하느님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주신다고 그랬지요?

라디오 주파수가 맞아야 맑고 깨끗한 방송을 들을 수 있듯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도 영적 주파수가 있다고 그랬어요.

그 주파수 첫 번째, 양심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어요.

두 번째, 말씀이에요.

세 번째, 성사예요.

네 번째, 바로 십자가의 삶이에요.

누구나 이 십자가의 삶은 다 싫어하지만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 강하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시는 것이 바로 십자가예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채널, 주파수를 잘 맞출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물고, 그 분 안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사는 방법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되면 우리는 네 가지로부터 영적자유를 누립니다.

첫 번째,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우리 어느 누구도 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한 번은 죽어야 되고, 나이가 들면 원치 않아도 이 병 저 병이 온 몸을 괴롭힙니다.

늘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요.

그러나 지금 말씀 드린 대로 진리 안에서 살면

예수님 받아들이고,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사형수처럼 살기 때문에

어떤 병이 오더라도, 어떤 죽음이 오더라도 담대하게 받아들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제일 이기기 힘든 것은 바로 나입니다.

아픈 것보다 여러 가지 악습, 내 자신의 상처가 우리들을 괴롭히기 때문에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진리 안에, 예수님 안에, 성령 안에, 성모님 안에 살 때는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세 번째는 타인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늘 사람을 가슴에 두고 살다보면 불편함을 느낍니다.

죽을 때까지 미운사람 피해 도망 다녀야 하고

지금은 나에게 잘 해주지만 한 순간에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 우리는 압니다.

 

 

네 번째는 죄와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4대 영적 자유는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살 때

성령님 안에서 살 때

성모님 안에서 살 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집에서 출발하셨고 방향을 감곡으로 방향을 정하셨을 때

분명히 목적이 있어서 왔을 겁니다.

 

 

오늘 기도의 찬미의 밤 하면서 내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성모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방향을 감곡으로 잡은 것 자체가 여러분의 의지로 잡은 것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부르셔서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초대해 주셔서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내가 괴롭고, 힘이 들었고, 암환자고

성모님 만나서 끝장을 보려고 온 사람이고...

이런 이야기 하지 않아도 다 그 분 알아들으십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딱 한 마디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세리와 바리세이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바리세이는 성전 앞에까지 와서 자신만만했지요?

“저 아시지요? 음탕한 적도 없고, 부정직한 적도 없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 칼 같이 하고, 십일조 끝내주게 합니다.. 저 뒤에 있는 세리와 비교하지 마세요.”

 

 

세리는 성전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고개도 못 쳐들고, 그저 한 마디만 되풀이 했어요.

‘주님, 죄인 왔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날 의인으로 인정받고 돌아간 사람은 스스로 의인인 척했던 바리세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했고 자비를 청했던 세리가 의인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아무도 ‘내가 스스로 의인이다!’

저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 쪽에 속해 있다고 생각이 들면 조용히 일어나 집으로 가십시오.

이 추운 날, 우리는 죄인이기에 떨고 있는 겁니다.

미사 드리는 사제도 죄인이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이지~ 의인은 이 자리에 있을 필요 없습니다.

 

 

의인은 매달리고 도움을 청할 것이 없는데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 안에서, 성모님 안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성인이 될 가능성이 언제라도 있는 죄인들만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습니다.

 

 

죄인으로 들어와서 죄인으로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우리는 은총이라고 하는 하느님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톨릭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이 들어와서 성인이 되는 종교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수많은 성인들의 삶이 애초부터 성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분들의 삶이 우리보다 훨씬 죄 중에 살았지만

회개하고 성인이 되었다고 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늘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오늘 미사 중에 주님의 성체가 여러분의 몸 안에 들어갈 겁니다.

성체를 영하기 전에 속으로 한 마디 하십시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성체를 영한다음 자리에 들어가셔서 그 예수님의 손을 가지고

치유기도 하시면 믿는 대로 치유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