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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음을 살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8 조회수699 추천수1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사순 제5주간 목요일 - 죽음을 살다

 


 

2005년 삼성 이건희 회장 막내 딸 이윤형씨가 뉴욕 자신의 숙소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남자친구와 사귀었었는데 그 남자친구의 집안배경이 썩 좋지 못하자 집안의 반대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우울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윤형씨에게 삶의 의미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살아왔었는데 이루어질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좀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한 남편이 버스 추락으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다 아내가 죽은 자리에서 자신도 몸을 던져 자살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남편에겐 아내가 삶의 의미 전부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요? 반대로 무엇 때문에 사람이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마더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하여 어떤 도시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여자 교우 한 분이 테레사 수녀를 붙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자살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듣고 테레사 수녀는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매여, 자살하기 전에 내가 자매에게 한 가지만 요청하고 싶어요. 내가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나와 같이 한 달만 일하고 난 후에 자살을 하세요.”

이 여자 교우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테레사 수녀를 따라서 인도의 캘커타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아와 질병으로 까맣게 말라 비틀어 죽어가는 그들을 붙들고 부지런히 간호하고 치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살고 싶어졌습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게도 살 만한 보람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 여자 교우는 자살의 유혹을 극복하고 테레사 수녀와 함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확히 말하면 ‘무엇을 위해서 (What for)’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즉 삶의 목적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냥 살아가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생존자체가 목적인 것은 동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싶어 하고 그 이유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동물은 살기 위해서 살지만, 인간은 세상에 왜 내던져 졌는지 그 존재의 이유를 묻고 그 이유를 찾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공지영씨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세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던 자살만 기도하던 사형수는 한 여자의 사랑을 받고 처음으로 다시 살고 싶어짐을 느낍니다. 사랑만이 살아있음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게 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소중히 간직해야 할 보물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고 싶어집니다. 이 ‘위해서’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잃어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삶이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을 할 때도 그 사람을 위해서 많은 것을 해 주려 노력하고 그것이 행복이기는 하였지만,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삶의 근본적인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셨다면 무엇을 위해서 사셨겠습니까? 바로 인간 구원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사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 ‘무엇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합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 사셨던 그 분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그 분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랑 자체에 삶의 의미를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인간 모두의 삶의 목적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당신을 위해서’ 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를 위해 사셨기에 죽음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아버지와 인간을 ‘위해’ ‘사신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산 것이지 참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을 위해 살 때 ‘죽음’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일매일 죽음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행복할 때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죽으면서도 행복하다면 그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는 사람이 벌써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 죽음도 죽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됨을 되새겨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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