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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9 조회수832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3월 29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keeps my word will never see death.
(Jn.8,51)


제1독서 창세기 17,3-9
복음 요한 8,51-59

언젠가 어느 본당에서 청소년 미사를 봉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본당에 있지 않다보니 청소년 미사 봉헌하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랜만에 청소년 미사를 봉헌하니 기분이 평소와 남달랐지요. 특히 일반 미사와 다르게 학생들이 밴드를 구성에서 성가 반주를 하니 무척이나 신이 나는 미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본당의 밴드에 문제점이 하나 있더군요. 드럼 소리가 유난히 커서 다른 악기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데 드럼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악기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즐기려면 당연히 모든 악기들이 내는 소리를 함께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성당에서 드럼 치는 학생 역시 너무나도 열성적으로 연주를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다른 악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혼자서만 열심히 치고 있는 것이라면 제대로 된 연주 소리를 낼 수가 없겠지요.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악기는 무시한 채, 좋아하는 악기 소리만 들으려고 하면 어떨까요? 자신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악기 소리를 제일 싫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들은 자기만 원하는 사랑을 하려고만 합니다. 다른 주변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에 근거에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케스트라에서 한 가지 악기 소리만 톡 튀어나와서 제대로 된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라는 커다란 오케스트라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지 못하는 방해꾼의 모습의 모습일 뿐입니다.

열심히 하는 동시에 다른 악기와 조화를 이루어야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주님의 멋진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계속해서 나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과 욕심만을 간직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들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기적과 말씀을 기초로 했을 때 의심할 바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잣대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지요. 그러다보니 예수님을 마귀 들린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세세한 율법의 세부 규정까지도 철저하게 지켰던 그들의 열심함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자기는 옳고 자기와 다른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기심으로 인해 그 열심함이 모두 무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하고 몇 가지만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오케스트라는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악기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전체 악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 안에서도 모든 사랑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요? 나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정말로 바른 것이었을까요? 겸손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길이 하나라고 여기면 모든 길이 막다른 길이다(고든 리빙스턴).


어제는 부천의 심곡본동성당으로 판공 나갔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부활을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에...



주님께 대한 믿음
 

언젠가 아는 청년들과 극장에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영화 상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우리들은 뛰기 시작했지요. 간신히 표를 구입해서 자리에 앉았지만,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글쎄 급하게 주차를 시키다보니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 생각난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되었으니 다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태연히 앉아서 영화 관람을 즐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차 안에 노트북이 있어서 혹시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라는 불안함이 가득했거든요.

영화가 끝난 뒤에 급하게 주차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역시나 차문을 닫지 않았더군요. 그러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즉, 안에 있던 물건은 아무 이상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바로 이 순간 이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냥 영화나 잘 볼 걸…….’

만약 차에 노트북이 없었다면 차문을 닫지 않았어도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일반 사설 주차장이었으니, 주차 요원의 성실함을 굳게 믿었더라면 굳이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을 의심했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 없이 의심하는 사람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늘 불안과 초조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여유를 갖고 이 세상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 대한 욕심과 믿음은 함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주님께 대한 믿음. 나의 행복을 위한 무조건적인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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