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ㅁㅁㅁㅁ 思友-박태준♥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9 조회수358 추천수2 반대(0) 신고

 



 



 


 


3월30일(금)
음3/9

갈매못과 공주에서 6위 순교하신 날







    다블뤼   안토니오   갈매못   1866.3.30
 
    위엥   루카   갈매못   1866.3.30
 
    오메뜨로   베드로   갈매못   1866.3.30
 
    장주기   요셉   갈매못   1866.3.30
 
    황석두   루카   갈매못   1866.3.30
 
    손자선   토마스   공주,교수형   1866.3.30

 

 

 


聖 다블뤼 안토니오
관 련 갈매못 순교일 1866.03.30

 




한국명은 ‘안돈이’(安敦伊)이며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었던 안 안토니오 주교는
한한불(韓漢佛)사전을 비롯하여 많은 번역서와 저서를 남겼고,
10여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 순교자 비망기」를 완성하는 큰 업적을 이룩하셨다.

프랑스의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나 한국 풍속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데다
위장병과 신경통에 시달렸지만, 한국말을 잘하고 보신탕을 즐기는 등
가장 한국적인 사제로 알려져 있다.
1845년 10월 조선에 들어와 20여 년 동안 양 떼를 위하여 봉사하던 안 주교는
1866년 3월 11일 홍주 거더리에서 체포되어
민 신부, 황석두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고,

유창한 한국말로 천주교에 대한 공격을 반박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한 형벌을 받으셨다.
3월 30일에 안 주교 일행을 충청도 갈매못으로 압송한 형리들은 일행을
마을에 조리돌리며 형 집행을 지연시키려 하였지만,
마침 이 날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으므로
안 주교가 당일 집행을 요구하시어 그대로 형이 집행되었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우리 나라에서 20 여년간 사목하시며
순교자 비망록을 남기시ㅣ는 등 큰 업적과 함께
가장 한국적인 선교사로 알려진
제5대 조선 교구장 성 다블뤼 안토니오 님이시여

오늘은 성금요일은 아니지만 한 주 앞둔 금요일입니다.
영광의 천국 동산에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聖 위엥 루카
관 련 갈매못 순교일 1866.03.30

 

 




민 신부는 프랑스 랑그르 교구 출신으로,
1861년 사제가 되었고 1865년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백, 김, 서 신부와 함께 조선에 파견되셨다.
 
충청도 내포에 머물며 안 주교에게 한국말을 배운 뒤
홍주(洪州) 황무실에 부임하여 전교하셨다.
 
1866년 3월 11일 안 주교가 체포되자 자수하여
안 주교, 오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고,
갖은 고문을 겪은 뒤 3월 30일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음으로써
30세 나이로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입국한지 겨우 1년에
30세의 젊음으로 순교하신
사제 성 위엥 루카 님이시여
찬미 감사를 드립니다.
천국 동산에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聖 오메뜨르 베드로
관 련 갈매못 순교일 1866.03.30

 



프랑스 앙굴렘 교구 출신인 오 신부는 1862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63년 6월에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았다.
경기도 수원 근처에 있는 샘골에서 한국말을 익혔으며
충청도 홍주 거더리에서 전교하셨다.

1866년에 박해가 일어나고 그 해 3월에 안 주교가 체포되자 피신하려고 배를 탔으나,
거센 역풍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더리로 돌아와 체포되었다.
오 신부는 안 주교, 민 신부 등과 함께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3월 30일 갈매못에서 안 주교 다음으로 두 번째 칼날을 맞아
29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29세의 젊음을 이국 땅 조선에서 순교하신
사제 성 오메뜨르 베드로 님이시여
찬미 감사를 드립니다.
영원의 천국 동산에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聖 장주기 요셉
관 련 갈매못 순교일 1866.03.30

 





‘낙소’라고도 불렸던 장주기님은
경기도 수원(水原) 느지지(현 경기도 화성군 양감면 육당리)에서 태어나
1826년에 세례를 받았다.

박해와 친척들의 방해를 피해 충청도 배론으로 이사하였고,
회장이 되어 모범적인 신앙 생활을 하셨다.
1855년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될 때에는 자신의 집을 임시 신학교로 내어 주고,
자신은 신학교에 딸린 땅에서 농사일을 하며 잔일을 도맡아 하셨다.

1866년 3월 1일 배론 신학교에서 신 신부와 박 신부가 체포되자
장주기는 제천 부근의 노럴골로 피신하였지만,
다른 교우들이 피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자수한 뒤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울의 포청에서 고문을 견뎌 내며 끝까지 신앙을 지켜,
때마침 홍주 거더리에서 끌려 온 안 주교, 민 신부, 오 신부, 황석두 등과 함께
3월 30일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64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배론 신학교 땅을 봉헌하고
선교 사제들과 함께 총청 보령 갈매못에서
군문효수 되신
성 장주기 요셉 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聖 황석두 루카
관 련 갈매못 순교일 1866.03.30

 




‘재건’이라고도 불렸던 황석두님은 충청도 연풍(延豊)의 양반 가문에서 자라나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 시험을 치르러 상경하다가,
한 주막에서 천주교인과 사귀게 되어 입교하셨다.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동안 벙어리 행세를 하며 교리서를 탐독하였고,
이에 감동한 부친과 가족들도 입교하게 되었다.
그는 덕행이 뛰어나고 교리 지식이 풍부하여
주교와 신부들의 복사로, 회장으로 활동하셨다.

고 주교에게 금욕과 절제를 위하여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받고
독신 생활을 하였으며,
안 주교를 도와 교리서 번역과 교회 서적 출판에도 참여하셨다.

1866년 3월에 먼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안 주교를
몇십 리나 따라간 황석두님은 결국 함께 체포되어,
3월 30일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54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과거 길 주막에서 받아들인 복음의 씨앗을
벙어리 짓 3년 동안의 침묵의 신앙 끝에
부모님들의 영혼까지 살리신 님....

안주교의 순교 길을 몇 십리나 뒤따르다가 뒤따라 체포되신
성 황석두 루카 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聖 손자선 토마스
관 련 공주 순교일 1866.03.30

 

손자선님은 충청도 홍주(洪州) 거더리 마을의 3대째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안 주교가 체포된 뒤 압수한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는 기별을 받았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어, 손자선이 혼자서 물건들을 찾으러
덕산(德山) 관아로 갔다가 체포되었다.
관장은 손자선을 옥에 가두어 고문하며 배교를 강요했지만 굴하지 않자
그를 해미(海美)로 보냈다.
해미에서 두 다리가 부러질 만큼 심한 고문을 받고도 신앙을 지킨 손자선님은
결국 공주(公州) 감영으로 이송되어
1866년 3월 30일에 교수형을 받아 23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순교하신 안 주교 님의 유품을 찾으러
관아로 갔다가체포되어
24세에 순교하신
성 손자선 토마스 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아멘


 



1.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2.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3. 소리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작성자 김현(kimhh1478) 쪽지 번 호 70497
 
작성일 2012-05-14 오전 6:34:30 조회수 440 추천수 2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