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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리아 최상의 경지 그리스도 구속자 ? [교황청 문헌] 묶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30 조회수365 추천수0 반대(0) 신고

'뉴에이지적인 ㅡ 마리애' 경계 , 주의

뉴에이지 유사영성 <과> 마리애 신심의 혼합

 


뉴 에이지에서 영성이라는 말은 전체와 결합된 (이분법이 없는 단일론, 전체론적 합치 혼합)으로 충만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뉴에이지 신비주의''는 사랑이 충만한 초월적인 하느님을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함으로써 생기는 경험, ...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신'을 위격으로 보지 않는 내재론적 종교 체계가 (뉴에이지가) 제시하는 기법과 방법들은 '아래(저변)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방법들은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도록 하지만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신성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계획이다. 이것은 흔히 '내면의 신' (인간 신, 이념 신, 우주 신)에 대한 해방의 깨달음으로 이해되는 것을 향한 의식 차원의 상승이다.

뉴에이지는 우리 자신의 신성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며 우리가 신이며 우리는 거짓 껍데기를 벗겨 버림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인식하고 이 잠재력의 힘을 더욱 많이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신화'란 신이 되는 것을 말한다 주장한다.

뉴에이지에서 '신적인 에너지'는 인간이 이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에너지'로 묘사된다. 뉴에이지에서도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나자렛의 예수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에서의 '그리스도'는 자신이 신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리하여 자신을 '보편적 스승'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명칭(나 = 그리스도)이다. 

뉴에이지에서 나자렛
예수님은 유일한 그리스도가 아니며 부처나 다른 사람들 처럼 '그리스도적' 성격이 드러나는 여러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하고 주장한다.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의 신비를 희랍 교부들은 인간의 신화 (神化)라고 불렀는데 그 신비에 가까이 나아가고 또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우선 인간이 근본적으로 피조물이며 영원히 피조물로 존속하므로 인간의 자아가 은총의 최상 경지에 이를지라도 결코 신적 자아로 흡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다른 성사들 안에서-그리고 유비적으로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들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또한 우리를 그 자신의 신적 본성 안에 참여시켜 주신다. 그분께서는 강생을 통하여 몸소 지니신 우리의 창조된 본성 곧 인간성을 말살하지 않으신다. 
 
 
출처: '교황청 문헌' 및 '요한 바오로2세 교황 문헌'의 일부
문헌; 그리스도교 명상 , 생명수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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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성’은 결핍이기는 커녕 오히려 가장 위대한 선이다.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구별(타자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성은 기대할 수 없다. 하느님과의 일치란 인간이 피조물일 때에 하느님과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신적(하느님) 본성 안에 참여시켜 주시는 것이지, 인간 자체의 ''내면의 신''이 있어 하느님과 신적 자아로 흡수되는게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는 하느님께서 당신 창조물에게 특히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지극히 보잘것 없는 이들에게 내려 오신 것이다. 예수님만이
하느님으로서
유일하게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 구속자가 되시는 것이다. 우리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공동 구속자로 변질시킬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또 하나의 어린 양> 곧 예수님의 어린 양이다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마태 24, 5 / 마르, 루카>  그자는 자기 때가 되면 나타날 것입니다. ... 사실 그 무법의 신비는 이미 작용하고 있습니다. ... 그 무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작용으로, 그는 온갖 힘을 가지고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멸망할 자들을 상대로 온갖 불의한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여 구원받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속이는 힘을 보내시어 거짓을 믿게 하십니다. <2테살로니카 2, 2 - 12>

"인간이 근본적으로 피조물이며 영원히 피조물로 존속하므로 인간의 자아가 은총의 최상 경지에 이를지라도 결코 신적 자아로 흡수되지 않는다" => 인간은 이제 인간이 아니고, 인간은 하느님이 되었다는 말은 유혹이다. 하느님에게로 흡수되어 인간도 이제 하느님이 된다는 흡수가 아니라 참여이다.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또한 우리를 그 자신의 신적 본성 안에 참여시켜 주신다."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분명한 구별성은 하느님에 의한 인간의 품위를 더욱 높여주는 것이다.  < 게시자 >


그리스도교 영성은 은총을 통하여 삼위이신 하느님의 삶에 들어가는 직접 참여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세상의 변화를 위한 노력과 교회 생활을 필요로 한다. 뉴에이지가 추구하는 것은 흔히 자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모상인 그리스도의 위격을 향해 각 개인이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뉴에이지는 대부분 구원을 개인의 노력이나 기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참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달려 있다. 인격적인 이 관계는 은총의 성사로 유지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은 구원에 도움을 주는 고통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물이라고 여기며, 신앙 공동체인 교회와 친교를 이루고 피조물과 연대를 이루는 가운데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상 <뉴에이지에 관한 사목적 성찰>에서 일부 발췌


교리서 675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는 많은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게 될 마지막 시련을 겪어야 한다. 교회의 지상 순례에 따르는 이 박해는, 진리를 저버리는 대가로 인간의 문제를 외견상 해결해 주는 종교적 사기의 형태로 ‘죄악의 신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최고의 종교적 사기는 거짓 그리스도, 곧 가짜 메시아의 사기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과 육신을 지니고 오신 하느님의 메시아 대신에 자기(인간, 피조물, 마리아)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교리서 '죄악의 신비' 교회의 마지막 시련 /// 그리스도 메시아 = 구속자>

교리서 676 : 거짓 그리스도의 이 사기는, 역사를 넘어 종말의 심판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역사(세상) 안에서 이룬다고 주장할 때마다 이미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짓 그리스도 = 내가 그리스도다 = 또 하나의 그리스도 ///  무법의 신비, 죄악의 신비 <마태오, 마르, 루카 복음서, 2테살로니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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