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26) 성령 청원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축성
성찬례에서는 우리 삶도 변화한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3년 이탈리아 로마 성 요한 라테란 대성당에서 거행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중 성작을 들고 있다. CNS 자료사진. “성찬례 거행의 중심에 놓여 있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주님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는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념하면서, 주님께서 수난 전날 밤에 행하신 의식을 계속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3항) 어떻게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될 수 있는가?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성변화는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이에 관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전통은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동방 교회에서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힘과 활동에 강조점을 두어 ‘성령 청원 기도’를 미사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성변화를 위한 핵심 부분으로 보았다. ‘에피클레시스’(epiclesis)라 불린 이 기도는 사제가 하느님 아버지께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특별히 간청하는 기도이다. 4세기의 동방 교부인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주교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영적 찬미가로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한 후에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도록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예물에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청합니다. 성령이 닿는 것은 무엇이나 다 성화되고 변화되기 때문입니다.”(예루살렘의 치릴로, 「신비 교육」 5,7) 한편 서방 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힘이 마지막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 잔을 들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성찬 제정 말씀’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4세기 서방 교회의 대표적인 교부인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이 빵은 성사의 말씀 전에는 빵이지만 축성되면 그리스도의 살이 됩니다. … 사제는 거룩한 성사를 거행할 때 이미 자신의 말을 쓰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성사를 거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란 어떤 말씀입니까? 그것은 확실히 만물을 창조하는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얼마나 큰 효력을 갖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 그래서 축성 전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었지만, 축성 후에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암브로시오, 「성사론」 4,4,14) 사실 강조점만 다를 뿐 신학적으로 정초된 두 입장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전례는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삼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라 개정된 「로마 미사 경본」에 덧붙여진 새 감사 기도들 안에는 이 두 요소가 조화롭게 잘 결합되어 있다. 감사 기도를 이루는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성령 청원 기도’와 ‘성찬 제정 말씀’의 의미는 언제나 감사 기도의 전체 구조와 통일성 안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 감사 기도 안에는 두 번의 성령 청원이 있다. 첫 번째 성령 청원은 예물에 대한 축성 기원으로 성찬 제정 말씀 전에 있다. 여기서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제대에 봉헌된 예물, 곧 빵과 포도주 위에 성령을 보내 주시기를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감사 기도 제2양식)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 아버지께 봉헌하는 이 예물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어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감사 기도 제3양식) 이때 사제는 예물에 두 손을 펴 얹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성령의 임하심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두 번째 성령 청원은 미사에 참여한 우리 자신(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기원으로 ‘성찬 제정 말씀’ 다음에 위치한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이들의 일치를 위해 간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감사 기도 제2양식)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굽어보소서. 이는 주님 뜻에 맞갖은 희생 제물이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하소서.”(감사 기도 제3양식) 그러므로 미사의 희생 제사에서 성령의 힘으로 변화되는 것은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이다. 미사가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단지 예식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성찬례 거행은 참으로 우리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욱 깊이 결합시킴으로써 이것을 이루신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신 성모님처럼 우리가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긴다면, 성령께서는 매일의 미사 거행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이다.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1월 20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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