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마고사 사막을 통과하는 작은 소로 길이 있습니다. 먼 사막의 길을 이 소로로 가자면 중간쯤에 물 펌프가 하나 서있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이 사막을 말을 타거나 걸어서 통과하던 행인은 물 펌프를 보고는 침을 삼키며 뛰어갑니다. 펌프에 도착해 보니 펌프의 손잡이에 끈으로 깡통이 하나 매어 달려 있고 그 깡통 속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펌프에 물을 붓고 펌프질만 하면 물은 틀림없이 나옵니다. 이 땅 밑의 샘에는 언제나 물이 있습니다. 이 펌프 옆의 흰 바위 밑에는 큰 병에 물이 가득히 담겨져 모래에 파묻혀 있습니다. 햇볕에 증발치 않도록 마개를 잘 막았지요. 그 병을 꺼내어서 펌프에 부으십시오. 만약에 그 물을 먼저 마시면 물이 모자랍니다. 그 물을 펌프에다 다 붓고 펌프질을 하십시오. 제 말을 믿으세요. 틀림없이 물은 얼마든지 나와서 당신이 필요한 대로 충분히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물을 다 쓴 후에는 그 병에다 물을 가득히 채워서 마개를 꼭 막아 처음 있던 대로 모래 속에 묻어 두십시오. 당신 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추신: 병의 물을 먼저 마셔 버리면 안 됩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 빨래를 도와드리며 물 펌프질을 많이 해 봐서 처음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야 밑에 있는 물이 딸려 올라온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만약 펌프에 고장이 났다면 그 물은 밑으로 흘러 내려가 더 이상 빼 낼 수 없습니다. 사막에서 이런 상황을 만나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물을 마셔버리면 그 펌프에서 물을 다시 빼내기란 매우 어려워집니다. 그 곳까지 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물을 가져왔더라도 굳이 그 곳에 자신의 물을 붓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은총은 이런 모험을 믿고 감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흘러들어왔습니다.
믿음의 달인이었던 분은 성모님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당신 온 인생을 봉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당신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말씀이 인간의 육체를 취해 세상에 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오늘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도 그리스도로부터 은총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엄청나게 비싼 나르드 향유를 바르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습니다. 결국 그 향유는 자신의 머리를 향기롭게 한 것입니다.
향유는 바로 성령의 은총을 나타냅니다. 야곱이 배텔에서 잠을 잘 때 자신의 머리맡 위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가 세워져 있었고 하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일어나 앉아서 자신이 베었던 돌에 기름을 바릅니다.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는 바로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또 야곱의 머리가 있었던 곳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성령으로 상징되는 기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으로 흐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은총은 아버지로부터 사다리인 그리스도의 머리를 통하여 발로 내려오고 우리 인간은 그 은총을 다시 머리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로 닦아드린 것은 이렇게 겸손하게 그 분 발치에 머리를 숙일 때 그리스도로부터 은총이 흘러들어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구원의 은총을 받는 조건으로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마리아는 자신이 아끼는 귀한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봉헌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면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합니다. 그런데 과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반성해봐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아침에 일어나 씻고 화장하는 시간보다 하느님께 바치는 시간이 적다면, 그 분께 천상의 은총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일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한 다음에 심부름 값은 얼마이고, 집을 지킨 값은 얼마이고, 무엇은 얼마이고 계산하여 그 청구서를 아버지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을 다 보고서 그 돈을 지불해 준 다음에 아버지와 아들의 은총의 관계를 가르치기 위해 아들에게 이러한 청구서를 냈습니다.
네 어머니가 너를 가졌을 적에 열 달 동안 고생한 값이 얼마이고, 너를 해산했을 때에 병원에 지불했던 값이 얼마이고, 또 학교에 보내는데 든 돈, 거기에다 하루치 밥값은 얼마, 옷값은 얼마 등을 적어 주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그 어린 아이는 그것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듯 아이가 부모에게 어떤 일을 해 주면서 그 값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께 봉사하고 봉헌하면서 과연 따지고 있지는 않은가요?
심부름 하나 했다고 청구서나 꺼내드는 아이에게 어떻게 더 좋은 것들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만큼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우리는 그 분께 우리 것을 봉헌하는데 주저하고 계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렸기에 그것이 자신에게 은총으로 되돌아왔듯이,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먼저’ 봉헌해야만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은총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