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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봉헌금의 양과 질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2 조회수444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3. 세상 속 교회
봉헌금의 양과 질

우스갯소리 하나 있다. 지폐들이 죽어 하늘나라에 왔는데, 베드로 사도가 천 원자리 지폐는 환영하며 천국으로 가라 하 고, 오천 원과 만 원권은 연옥으로 가라고 했다. 이윽고 십만 원과 백만 원권이 죽어 하늘나라에 오자 베드로 사도는 이들 에게 지옥으로 가라고 명했다. 십만 원권과 백만 원권이 불공 평하다고 따지자 베드로 사도는 "너희를 성당에서 본 적이 없 기 때문이다."고 했다. 솔직히 신부들이 성당에서 가장 하기 싫은 말이 '돈' 이야 기라고 한다. 성당 운영과 본당 건축 문제로 돈 이야기를 하 려고 하면 대다수의 신자들이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 때문 이다. 요즘같이 살기 힘든 시대에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떠맡겨야 하는 신부들의 고충도 여간 아니다. 차라리 십일조 와 각종 봉헌금을 신자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강조하는 대 부분의 개신교처럼 '헌금=축복'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가톨릭 신자들은 연초에 책정된 교무금을 달마다 바치는 일 조차 버거워하고, 그나마 교무금 책정을 하지 않는 신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금은 본당신부로 생활하기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오 랫동안 신학교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돈 문제에 대한 현실감 각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되는 사 제이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다보니 일반 신자 들이 겪는 '돈'에 대한 고충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다. 본당 운영과 건축 등의 일을 맡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돈이 궁하다 는 것이 뭔지, 돈을 빌려 쓰고, 돈을 갚아야 하는 어려움도 잘 모른다. 천 원 한 장이 아쉬워 시장에서 콩나물을 두고 실랑 이를 벌이는 가정주부의 고민과 자녀들의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청이는 현실의 고충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신자들 중에는 정말로 천 원 한 장 내기도 쉽지 않은 사람 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과부의 헌금(마르 12,41-44) 이 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가난하지만 평생을 모은 자신 의 전재산을 남모르게 봉헌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가난의 영성 또는 비 움의 영성을 강조해온 가톨릭교회는 영적 가난에 대해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가난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애환도 모르 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천 원짜리 한 장으로 헌금을 대신 할 수밖에 없는 신자들과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때문에 평 균 5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하는 전세살이 신자들의 고 충도 안다. 설령 좋은 마음으로 신축금 신립을 해도 이사를 하면 이내 '내성당'이 되지 못하는 신자들의 안타까운 처지나, 기껏 신축금을 봉헌하니까 본당이 분가해서 또 다른 신설 본 당을 위해 신립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신자들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교회가 분명히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점은 세상 재물의 많고 적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재물을 어떻게 쓰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일이다. 예수님도 재 물에 대한 탐욕을 늘 경계하라고 하셨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 유에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 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을 나무라면서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카 12,34)고 하신 다. 정말로 살다보면 돈 몇 푼에 목숨 걸고 서로 다투며 결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부모 자식과 형제간에도, 친한 교우 사이에서도 이러한 일이 주변에 허다하다. 도박으로 한탕 인 생을 노리는 사람들, 로또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들, 투기 와 속임수로 자기 이익만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계 실 자리가 없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점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아니라, '상대적 가난'에 하느님의 자리를 내 주는 우리의 나약함이다. 또한 '청빈淸貧'의 가치만큼 양심적 으로 부富를 쌓고, 재물을 나눔으로써 얻는 '내적인 부富'와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교회에 내는 봉헌금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미사 때 봉헌하는 헌금은 한 주간 동안 내려 주신 하느님 축복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표현이다. 주님의 제단에 각자가 얻은 소출의 일부를 정성껏 봉헌하면 사제가 하느님께 감사의 찬미로 봉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헌금은 금액의 크기보다는 정성에 달려 있다. 지갑 에서 아무 생각없이 지폐 한 장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살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었던 것들을 모아 마 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식 때 맛나게 먹은 밥 한끼를 예수님께 봉헌하거나 뜻밖에 얻은 수익의 일부를 기쁘 게 교회에 봉헌할 수도 있다. 예쁜 봉투에 정성을 담아 미리 헌금을 준비할 수도 있고 , 새 지폐에 마음을 담을 수도 있다. 돈이 우상이 되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가톨릭 신자도 모르 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돈보다 인생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값 진 가치가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신자다운 일이다. 바쁜 시간 을 쪼개 환자와 냉담자를 방문하고, 어려운 가정 일을 돕기 위 해 시간을 봉헌하고, 남이 싫어하는 교회의 궂은일을 맡아 하 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남모르게 자선을 베풀며 애덕을 실 천하는 것도 돈보다 가치 있는 봉헌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야 할 돈에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봉헌을 받아주실 하느님의 얼굴과 웃음을 먼저 떠올리는 일이다. 그것이 본래 돌고 돌아야 하는 '돈'을 하느님께 다시 돌리는 신자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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