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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부활 성야 미사 2012년 4월 7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3 조회수349 추천수5 반대(0) 신고

부활 성야 미사    2012년 4월 7일

 

마르 16, 1-7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복음서(1,4)의 말씀입니다. 그 생명의 빛을 따라 살겠다고 우리는 오늘 고백한 것입니다. 연약한 촛불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어둠을 밝히는 확실한 빛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지만, 그분 안에 하느님이 살아 계셨고, 하느님은 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미움이라는 어둠의 힘을 발동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사신 생명이 하느님의 것이었기에, 하느님은 그분을 당신 안에 거두어 살리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부활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십니다. 살리는 생명이십니다. 이 세상에 자리 잡은 억압, 지배, 미움 등은 생명을 위축시키고 죽입니다. 하느님은 자비하고, 살리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자비와 사랑이 우리의 행보를 밝히는 빛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밤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은 하느님 생명의 순리(順理)입니다. 자녀가 없어 자유롭던 사람들이 그 자유에 죽어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더 발전된 형태의 생명 안에 태어납니다. 나비는 애벌레의 삶에 죽어서 나비로 태어납니다. 성서에도 “밀알이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의 삶에 죽어서 살리시는 하느님 안에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며 사셨고, 이제 하느님 안에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필립비서는 모두가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라고 고백한다.”(2,10-11)고 노래합니다. 부활은 예수라는 한 생명이 죽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많은 생명을 태어나게 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세례 받을 때 하였던 서약을 갱신하는 것은 그분의 부활과 더불어 태어난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촛불 하나를 밝혀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에게 하나의 촛불이 주어졌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죽으면, 사람들이 촛불 하나를 우리 앞에 또 밝혀 줄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적 인간 조건을 외면하지 못하고 삽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얽매이고, 재물과 명예를 탐하면서 우리는 삽니다. 울고 웃으며, 사람을 좋아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우리는 삽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촛불 하나를 밝혀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먹는다.”(루가 15,2)고 비난 받았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유대인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입니다. 여인 한 사람을 단죄하고, 율법의 이름으로 돌로 치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예수님은 그 여인을 구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대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하느님은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십니다. “고을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루가 7,48)에게도, 유대교 지도자들이 죄인이라고 외면하던 중풍병자(마르 2,9)에게도 예수님은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 용서하는 생명이 우리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원인을 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대 유대교 지도자들은 모든 불행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벌이라고 그들은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선하지 못하기에, 하느님도 선하지 않은 분으로 그들은 상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요한 9,3)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사람들을 불행에서 해방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으면서,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인간 불행의 원인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믿고, 선한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셨다고 복음서들은 말합니다. 그분이 행동하신 동기는 항상 불쌍히 여김과 측은히 여김이었습니다. 그분은 특별한 지혜를 가르치지도 않았고, 대단한 권위를 과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기적을 행하는 기교를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 스스로를 과시하고자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상한 소리라도 내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권위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저속한 지배욕을 충족시킵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는 사람으로 오셨다고 말씀하면서 실제로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가련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의 빛으로 계십니다. 이제 죽음은 어둠도, 절망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생명 안에 새롭게 또 충만하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고 미워하여도, 나 혼자 버려져서 고독하여도, 내가 하던 일이 실패하여도, 이제 우리는 어둠 속을 헤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빛이 있습니다. 죽음의 어둠을 넘어서 하느님 안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사실을 보여주는 빛입니다. 그 빛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대가없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 그분이 믿고 행하신 바를 배우기 위해 그분의 빛을 밝혔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들의 빛입니다.

 

빛 앞에 어둠은 물러납니다. 빛이 있어 어둠 안에서도 우리는 주변을 봅니다. 우리 주변에는 함께 길을 가야 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비를 또 우리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의 어둠 안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이웃입니다. 우리가 손에 든 빛은 휘황찬란하지 않고, 연약하지만, 그 빛을 밝혀 든 이에게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빛입니다. 부활은 빛의 잔치이고, 생명의 잔치입니다. 하나의 빛이 비쳐서 이웃들을, 또 우리의 생명이 해야 할 바를 새롭게 보게 하는 기쁨의 축일입니다.

 

어두운 인류 역사 안에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를 비춰 줄 것을 기도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촛불을 밝혀 들고 세례에서 한 서약을 갱신합니다. 하느님이 아니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어둠을 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빛으로 계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또 성령이 숨결이신 새로운 생명으로 살 것을 고백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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