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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운명-자유-책임 - 4.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4 조회수40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2.4.4 성주간 수요일 이사50,4-9ㄴ 마태26,14-25

 

 

 

 

 





운명-자유-책임

 

 

 

 

 



오늘은 ‘운명, 자유, 책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참 묵직한 주제입니다.

 


우선 생각한 것이 운명입니다.

요즘 운명이란 단어도 회자됩니다.


모 인사의 ‘운명이다’란 책도 있고,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도 있습니다.

 


간혹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이게 내 운명이다’ 하는 고백도 듣습니다.


이런 치열한 삶의 결과 나에 대한 운명적 깨달음이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운명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운명과 자유와 책임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만이 비관론적 운명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결정된 운명이 아니라 하느님과 내가 만들어가는 열려있는 운명이요,

바로 이게 우리의 희망입니다.

 



영적지도의 목적은 둘이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안내해주는 것과

자기를 알도록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나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비관론적 운명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참 복된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은

바로 여기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아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알아가는 것, 이 또한 평생과제입니다.

 

오늘은 유다의 운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참 불행한 운명입니다.

누구나 이런 운명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이들이 자기의 운명을 탓하며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과연 어느 정도 유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는지요.

 

사실 악순환의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면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탓 없이 불우한 환경에 불리한 성향, 유전인자를 타고 난

한계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선 업이라 하기도 하고 윤회의 사슬이라 하는데

사람이 얼마나 이런 타고난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부자유하게 태어나기 때문이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절은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허구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 했습니다.



바로 진리는 하느님이요 하느님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유로워지며 참 내가 됩니다.

우리의 운명도 계속 새로이 형성되어 갑니다.

평생 주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만들어가는 나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사야서 주님의 종처럼 충실한 제자로서 사는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 아침마다 일깨워주신다.

  내 귀를 열어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님과의 깊은 친교만이

복된 운명에 참 나의 자유인이 되어 맡겨진 책임을 다하며 살게 합니다.


내 운명 역시 은총이자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100%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책임을 다할 때 복된 운명입니다.


아무도 탓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내가 지금 여기서부터 만들어가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유다는 실패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주님과의 제자 관계를 소홀히 한 책임이 참 큽니다.

 


주님과 함께 했지만 주님과 무관한 헛산 인생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죽음이 성경에 따른 것이었다 할지라도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란

주님의 말씀이 유다의 행동에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과 깊은 신뢰 관계의 제자였다면

이런 어리석은 배신행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우리의 복된 운명입니다.

운명에 대한 사랑, 운명에 대한 긍정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자

하느님께 대한 긍정이요,



동시에 나에 대한 사랑이자 나에 대한 긍정이기도 합니다.

복된 운명이신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아 갈수록

참 나를 알게 되어 자유로운 삶에 맡겨진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운명-자유-책임이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바로 이게 복음이요 믿는 이들의 축복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운명이 될 때

비로소 비관론적 거짓 운명론의 사슬에서 벗어나

내 책임을 다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참 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복된 운명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맡겨진 책임을 다하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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