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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의 눈 (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주영주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4 조회수404 추천수4 반대(0) 신고

마음의 눈

 

신학교에서 신학생들 영성지도를 7년 정도 한 적이 있었다. 신학교 사는 동안 기쁨이 참 많이 있는데, 제일 기쁜 것은 신학생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특히 한 달 피정지도 하는 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시간들이다. 피정 동안 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면담하며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힘들어하면 함께 힘들어하고,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며 그 시간을 보낸다.특히 힘들었던 학생들일수록 더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학생들은 하루에 1시간 묵상시간을 네 번 정도 갖는다. 준비기도 시간이나 마침 정리시간까지 하면 1시간당 30분이 더 추가된다. 대침묵을 지키며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한 것을 요점정리해서 면담을 하게 된다. 면담과정에서 기도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는데, 내가 중요하게 보는 요점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기도 내용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 자신과 예수님과의 만남이 없으면 무언가 공허함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인내하며 기다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으면 조금씩 개입을 한다. 기도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땠는지? 어떤 분심들이 있었는지?.......

 

어떤 경우는 학생이 분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인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보름이 지나도 계속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10 8-9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깊은 상처가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간단히 어린 시절을 묵상하게 한다든지, 부모와의 관계를 묻고,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기도 안에서 그 내용을 갖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무의식적으로 피하려 했던 과거의 상처를 만나고 그 상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부모와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안에 사랑 대신 미움이나 원망 증오가 자리하고 있으면 하느님께서는 그것부터 우선적으로 치유하기를 원하신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확신을 갖고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완성시켜나가신다.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그 학생은 그 시간부터 주님과 밀월관계를 갖게 되며, 기도시간이 참으로 기쁨의 시간이고 행복의 시간이 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된다.

 

자신 안에 많은 상처가 있어서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 사람의 가장 아픈 것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학생은 주님의 화려함만 바라보기에 서로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여도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여도 그 말에 힘이 없는 것은 문자의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추상적인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깊은 상처와 만나지 못하면, 또 매일 매일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하면, 무뎌지고 무뎌지면 그 안에 하느님이 살아계시지 못하게 된다.

 

유다는 예수님께로부터 대단한 신뢰를 받던 제자로 보여 진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아무에게나 돈주머니를 맡기지 않는다. 그만큼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지만, 돈을 만지면서 차츰 차츰 예수님보다도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팔아도 예수님은 대단한 능력가이기 때문에 적들에게 힘 못쓰고 당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의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의 영적인 눈이 멀면, 나의 순수함이 흐려지면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마련이다.

 

사제로 산다는 것은 대단한 위험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 조금만 말 잘하면 인기와 명예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많은 경우 눈이 가리워져 예수님 위에서 군림하며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닌 내가 상상으로 만들어 놓은 예수님을 따르기 쉽고, 또 그 상상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쉽게 배반할 수도 있다.

 

오늘 묵상 중에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난데없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하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기근이 오려는 것을 예고해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가난하게 살라고 하시는 말씀이신지 모르겠다. 당장은 이해가 안되도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다보면, 그 말씀이 나에게 은총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주님 제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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