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쁜 세례명과 좋은 세례명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6 조회수3,802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3. 세상 속 교회
예쁜 세례명과 좋은 세례명

사제생활을 하다보면 신자들이 세례명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름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하느님 자녀 로 새로 태어나는 신자들이 세례명을 짓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되지만, 신부가 무슨 작명가도 아니고, 무당처 럼 영험한 이름을 골라주는 것도 아닌데 막상 부탁을 받으면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가톨릭교회의 전통상 훌륭한 성인 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선택해서 그들의 신앙적 모범을 본받고 주보성인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래에는 기억하기 쉬운 자신의 생일 날짜에 맞추거나, 성인의 삶과는 무관하게 일단 예쁜 이름을 짓는 데 관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가끔 가톨 릭 신자들의 세례명이 특이하거나 성인 같지 않은 이름이 있어 서 물어보면 자신의 주보성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의 세례명은 사도 요한이다. 그런데 세례대장에는 '요왕' 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다. 어릴 때는 멋지고 예쁜 서양 이 름은커녕 '요강'을 연상시키는 촌스런 이름이 싫었던 기억이 난다. 옛날 사람들이 사도 요한과 세례자 요한을 구분하기 위 해 사도 요한을 '요왕'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후에 가서 알게 되 었다. 마르코를 '말구', 프란치스코는 '방지거', 마르티나는'말 지나'로 불렀다. 생각해 보면 선조들이 서양 이름을 한국식으 로 토착화한 노력의 하나였는데, 서양적 형태가 가톨릭적이라 고 여기는 분위기 때문인지 세례명도 서양 성인 이름을 그대로 쓰는 식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103위 성인이 탄생한 후에는 한 국 성인의 이름과 세례명을 동시에 쓰는 신자들도 늘었지만 여 전히 낯선 것이 사실이다. 서양의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곧 세례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들의 이름이란 것이 결국 그리스도교 문화권 에서 나온 이름이니 당연한 듯싶다. 가령 요한을 '얀 - 얀샌 - 존 - 존슨 - 한스' 등으로 부르듯 약간은 언어권에 따라 변형을 주어 사용하기는 해도 세례명을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외에 따로 갖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우리도 세례명을 부모님이 지어주신 한국 이름으로 그냥 부르자고 주 장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작명소에서 받아 주신, 부모님이 오랜 고민 끝에 공들여 지어 주신 이름 속에는 하느님께서 부 모님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신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 다. 그런데 신학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대부분의 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로 서양식 이름을 하나 더 받는다는 데 특별한 의미를 두며, 다른 이들과는 차별화된 신앙생활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정서상 이름 하나는 잘 지어야 한다. 근래 예쁘 지 않은 이름 때문에 사회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개명할 수 있 도록 법이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신자들 중에도 자기 세례명 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교회법상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례명을 바꿀 수는 없 다. 수도자가 될 경우 수도명을 새로 받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본래 세례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제들도 서품 후 자신 의 세례명을 그대로 쓴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가톨릭 세례명들 가운데 교회생활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이상한 이름은 없다. 너무 진부하거나 부르기 힘든 세례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렇다고 그 성인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 하는 신자 본래 소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생 불릴 세례명을 듣기 좋고 예쁘게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보성인이 될 분의 생애와 영성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주보성인의 삶을 열심히 따라 살다보면 어느 덧 그분을 닮아간다는 선조들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안은 듯 싶다. 이름이란 본래 그에 걸맞게 살게 해주는 기억이자 힘이 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제대로 모르는 성인의 예쁜 이름을 택하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성인의 이름을 택한다면 영적인 면에서 더 쉽게 공감하고 정서적으로도 더 쉽게 안정되지 않을까 싶다. 세례 때 고민하는 또 한 가지는 대부모를 정하는 일이다. 예 전에는 세례 당일에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붙잡혀서 생면부지 의 대자대녀를 만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생이별을 하고 죽을 때까지 대자대녀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근래에는 대부모를 미리 정하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 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모 제도는 가톨릭 신앙이 가진 좋은 후견인 제도와 같다. 유아세례의 경우에는 가능하면 그 가족과 지속적인 인연을 맺 을 사람이 대부모가 되면 좋고, 성인의 경우에는 입교를 권유 하고 인도한 사람이나, 연령층이 비슷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한 이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다. 이 시대는 부모의 권위만 내세 우지 않는 친구 같은 부모가 통교를 더 잘하기 때문이다. 대부모가 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요즘같이 저출산 시대에 막대한 교육비용을 지출하지 않고도 기도와 격려만으로 영적 출산을 돕는 대부모의 삶도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부담이 있다면 대부모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대자대녀 의 삶도 그러하며, 심지어 대자대녀가 제대로 살지 못하면 그 들 대신에 훗날 연옥단련으로 보속해야 한다는 옛 사람들의 '엄포' 때문이다. 나는 내 세례명을 사랑한다. 나의 주보성인은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자신을 가장 사랑받던 제자라고 칭한 사도 요한이시다. 열두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순교를 하지 않고, 평생 성모님을 곁에 모시고 살면서 복음서까지 집필한 성인이야말로 내게는 최고의 성인이시므로 나는 내 세례명을 사랑한다. 내게 남은 과제는 이분을 닮아가는 것인데, 그분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리라 기대한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