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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7일 토요일 부활성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7 조회수1,413 추천수1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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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토요일 부활성야 - 마르코 16,1-7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빈무덤 앞에서>

 

 

    언젠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밤 9시 경 공동묘지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어 안 되겠다 돌아가자, 이 시간에 무슨 성묘냐? 남들이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아야 된다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분을 모시고 글쎄 그 시간에 공동묘지에 도착했습니다.

 

    하필 묘소는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가 능선 부근에 주차를 한 후 또 한참을 걸어 내려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때 맞춰 밤안개마저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피어올랐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밤에 보는 공동묘지는 낮과는 새삼스럽게 달랐습니다. 늘 쉽게 찾던 묘지였는데, 그날따라 찾지를 못하겠는 것입니다. 밤이슬을 맞으며 안개 사이를 헤치며 이 묘역 저 묘역 찾아 헤매는데 때맞춰 산짐승 울음소리까지 크게 들려왔습니다.

 

    당시 부모님과 함께 밤 성묘를 갔었는데도 불구하고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자동으로 곤두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세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도 저와 비슷한 체험을 합니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입니다. 아마도 세 여인은 예수님을 여윈 슬픔에 그 밤을 뜬 눈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여명이 밝아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내달렸을 것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겨냅니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랑을 주셨던 예수님,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목숨까지 걸고 사랑했던 예수님께서 저리도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다니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생각 한 가지는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어젯밤 서둘러 치룬 매장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신들에게 참 사랑을 일깨워주신 분, 새 삶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을 위해 남아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골몰했습니다.

 

    여인들은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서둘러 최고급 수의와 향유를 을 것입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경황없었던 어제였기에 다시금 차분하고 꼼꼼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신 새벽에 무덤을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무덤에 다다르기 전 세 여인에게는 고민꺼리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통상적인 유다인들의 무덤은 동굴 형에다가 개폐 형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흙을 파서 관을 묻고 다시 흙을 덮는 봉분형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자신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무덤이었는데, 이 무덤은 한 마디로 동굴 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동굴방 안 바닥에 안치했습니다. 그리고 무덤 입구는 큰 돌을 굴려 막았습니다. 입구를 막은 돌을 옆으로 굴려야만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여인들로서는 힘에 벅찬 일이었기에 그리도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가에 도착했을 때 그 걱정꺼리는 덜었습니다. 이미 무덤 문이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즉시 다른 걱정이 엄습해왔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세 여인이 서둘러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혼비백산했습니다.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무덤 속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천사였겠지요. 그 천사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 계시지 않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극진하면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하늘을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여인들의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주님을 향한 극진한 사랑은 머지않아 주님 부활 체험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예수님 빈 무덤 사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와 신앙 안에서 큰 획은 긋는 중요한 대사건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그냥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의 시신으로 그냥 무덤 안에 남아계셨더라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의미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창시자의 무덤에 대한 의미 부여가 대단합니다. 작은 조각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회당이나 법당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창시자 예수님의 무덤이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빌리셨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소유의 무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만왕의 왕임을 드러내는 확증입니다. 빈 무덤은 참으로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빈 무덤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리는 부활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을 이겨냈음을, 예수님의 겸손과 순명이 죽음의 세력조차 물리쳤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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