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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금 여기에서 부활을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7 조회수623 추천수12 반대(0) 신고

예수 부활 대축일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요한 20,1-9


 

 

 
  지금 여기에서 부활을!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기쁜 날을 경축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평화, 기쁨이 여러분 가정과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세례를 받는 19명의 예비자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확실히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첫 영성체하는 분들에게도 주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함께해 주시고 앞날을 비추어 주시길 청합니다.



 
서로 부활축하의 인사를 나누시지요.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이 기쁘십니까? 왜? ‘나도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영원생명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순절이 끝나서 기쁘답니다!!!!” 절제와 희생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었나 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사랑의 삶의 결과라면 부활은 사랑의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패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를 희생과 속죄, 구원의 십자가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로 십자가를 구원 받을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힘으로 드러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셨고 아울러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은 구원역사의 절정이자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우리 기쁨의 원천입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은 온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죄와 죽음의 지배는 사라지고 영원한 세계로의 희망이 열린 것입니다. 인류는 주님의 부활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소식은 우리 신앙의 토대이며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활의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15,14)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으면 우리의 가르침도 헛되고 믿음도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조건 없는 사랑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드러내주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죽음이 결국 사랑의 승리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한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당신 친히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9-40)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은 더없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누리려면 먼저 ‘해묵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교만, 시기질투, 이기심에 죽고 절제와 겸손, 온유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욕망의 무덤에서 나와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부활을 살지 못하는데 어찌 훗날의 부활을 희망할 수 있겠습니까?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지구에 돌아와 “아무리 우주를 돌아보아도 하느님은 안 보이더라”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신부님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우주를 많이 돌더라도 하느님은 볼 수 없다.”라고 하였답니다. 부활의 기쁨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죽은 뒤에 새롭게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부활의 능력으로 지금 여기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보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고귀하게 살아야 하고, 또 살 수 있는 것이 부활의 큰 진리입니다.”(미국 필립스 브룩스주교)



오늘 복음을 보면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돌이 치워져 있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비었기 때문에 부활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 비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힘도, 무덤을 막았던 육중한 돌도,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도 주님의 부활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좌절과 절망을 가져왔지만 부활로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무덤의 삶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둡고 침침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미움과 분노에서 맑고 밝은 긍정적인 생각, 희생과 봉사, 사랑의 삶으로 나와야 합니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서 나와서 영원한 천상행복의 약속된 미래를 보고 오늘을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수난은 현세 생활의 수고와 고통과 죽음의 운명을 가리킵니다만, 주님의 부활과 그 영광은 우리가 받을 영원한 생명”(성 아우구스티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하느님께서는 지금 나를 도구삼아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오늘 여기서’ 살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시길 매괴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다시 한 번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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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부활하셨네/Don Besig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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