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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교하는 삶의 의미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8 조회수433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3. 세상 속 교회
선교하는 삶의 의미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이나 역 주변을 보면 교회 현 수막을 걸고 열심히 성가를 부르며 선교하는 개신교 신자들을 심심찮게 본다. 그때마다 속으로는 '뭐 저렇게까지 선교를 해 야 하나?' 또는 '저런다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까?' 하는 의 구심이 들다가도 그들의 선교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는 자신들을 향한 확신의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뀐 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 도 4,20)라는 말씀처럼 믿음은 본디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했을 때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나눌 수 있는 열정으 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선교교령 2항에서는 "순례하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다."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선교하는 일이 본래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뜻이다. 과연 그렇다. 교회는 개인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단순한 장소나 사회적 친교를 이루기 위해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공간이 아 니다. 교회는 인생 여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삶 에 눈뜨고,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고백한 나의 체험을 타인과 나누는 곳일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고 새 생명을 살아가는 동료 신자들과 신앙 안에서 이루는 만남과 친교, 화해와 용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세상에 전하려는 신앙 공동체이다. 많은 신자들이 선교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정작 어떻게 선교 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이유로 신 앙생활을 멀리하는 현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는 '모든 진리가 다 동등하다.'고 외치는 '종교다원주의'와 '웰 빙문화'를 등에 업고 우후죽순 늘고 있는 '신흥영성운동'의 매 력적인 유혹이 교회의 선교 사명에 커다란 장애물이자 도전으 로 여겨지는 시대다. 문제는 유독 종교에 관해서는 관대한 우리의 종교심성 덕분 에 '좋은 게 다 좋은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편이주의식으로 종 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며 성당에 나오 기를 권하는 것은 편안한 삶을 버리고 자유로운 생활을 구속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기쁨 과 행복을 찾기 위한 것임을 전해줄 필요가 있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자화상을 살펴보면 오늘날 가톨 릭교회가 선교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가톨릭 신 자 대부분은 '선교하는 삶'에 대하여 부지불식간에 '강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신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지, 무엇이 진정한 하느님의 진리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교회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선교의 장으로 보내 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많은 신자가 '전 기도할 줄 몰라 요.', '아직 선교하기엔 제가 부족해서 ---.' 등 소극적인 태 도로 애써 선교의 장을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서 과 연 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달리 말하면 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체험했는지 자문 해보는 것이다. 만일 내가 복음의 맛을 보지 못했다면,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 기쁜지 설명할 길이 없다. 만일 내가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예수님에게 서든, 교회 생활에서든 얻지 못하고 있다면 결코 사람들의 마 음을 움직이는 선교를 할 수가 없다. 오늘날 교회가 요청하는 선교하는 삶은 내가 먼저 예수님의 복음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혀끝으로 전달되는 신앙 은 결코 타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삶을 통한 선교'여야 한다.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복음화된 삶의 결실이어야 한다. 인도의 콜카타에서 보잘것없 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의 몽당연필'이 된 마더 데레사는 삶 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종파를 뛰어 넘어 가톨릭교 회의 훌륭한 선교사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복음으로 무장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분이 전하는 말은 힘이 있었다. 최근에 수단 톤즈에서 내전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원주민 을 돌보며 믿음과 사랑을 전파하다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 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무지한 상태로 살아가는 그곳 주민들 을 위해 크게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과연 예수님께서 지금 이곳에 오신다면 교회를 먼저 세울까 학교를 먼저 세울까?' 하는 물음이었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의 믿음은 삶과 밀접하 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찾아 주는 것이 선교의 첫 번째 길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큰 힘이 된 것도 말씀을 선포하기에 앞서 삶으로 자신의 복음적 열정을 보여준 그의 삶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파견받았을 때 자신들이 선포해야 할 바 를 삶으로 체득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몸소 겪은 제자들이 확신을 갖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있었 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인격에 감화되어 그분의 말씀 속에 서 힘을 얻고, 그분이 스스로 보여 주신 비움과 봉헌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선교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체험과 교육, 영성생활과 봉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 다. 선교는 윤리적 가치의 혼돈과 종교적 선택의 폭이 넓어진 세상에서 믿음이 진정 삶을 완성시키는 참된 진리임을 깨닫는 체험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자칫 선교가 결실 없는 공허한 외 침에 지나지 않는 것은 신앙 체험과 확신이 없이 복음의 표징 들만을 전하기 때문이다. 선교는 어떤 교리나 훌륭한 교회의 역사를 알리기보다 먼저 하느님을 만난 자신의 은총 체험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복음에 목말라하는 이들 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친근하게 돕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 다. 선교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교는 매사에 성령께 도 움을 청하면서 내가 어떤 처지와 입장에서도 하느님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힘을 성령께 청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복음 을 전하는 일은 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일이라는 확신이 필요하기 때 문이다. 최근에 구체적인 선교방법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한국 교회에 소개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가 장 가까운 나의 가족부터, 친척, 이웃,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들에게까지 어떤 처지와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지혜를 배우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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