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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본당사제로 산다는 것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9 조회수730 추천수1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신학 에세이3
본당사제로 산다는 것

나는 사제품을 받고도 오랫동안 낯선 땅에서 유학사제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열의와 열정을 갖고 신나게 첫 보좌신부를 지낸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제 가 된 지 올해로 만 14년째. 짧지 않은 세월인데, 그동안 교구 가 내게 준 학업에 대한 소명을 다하며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양성하고 신학을 연구하는 교수신부로 살다보니, 동기신부들 이나 본당신부들의 고민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물론 그들 의 삶이 때로는 부럽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학교에서 신학생들 과 지내는 삶에 익숙해진 터라 본당신부가 내 사제적 소명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안식년 마치고 드디어 본당신부가 되었다. 그 소임을 받고 살아온 지 몇 달이 지났다. 오랫동안 본당신부로 살아온 분들 한테는 익숙하겠지만, 내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신자들을 만 나는 일부터 본당을 운영하기 위해 결제를 하고, 각 단체의 활 동과 어려움을 듣고, 본당 청소년들을 만나고, 청년들과 술잔 을 기울이는 일도 내게는 새롭기만 하다. 아니 새롭다기보다는 신선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내게 본당사제의 삶은 새 신부가 되어 살아가는 느낌이다. 처음 본당사제로 발령을 받고 교구장님께 충성서약을 하러 갔 을 때, 첫 본당사제로 발령 받은 사제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 는데 그들은 모두 내가 학생처장으로 있을 때 학생회 간부들이 었다. 주교님과 관리국장 신부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자니 마치 과거로 되돌아가 학생회 간부회의를 하는 것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관리국장 신부님이 들어오시더니 대뜸 나에게 왜 여 기에 왔느냐고 물으셨다. 처음 본당 발령을 받았다고 하자 야 릇한 웃음을 지으셨다. 아마도 그 나이를 먹고 이제서야 본당 신부를 하느냐는 웃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본당 생활은 내게 새로움의 연속이다. 마치 신혼살림을 차린 것처럼 열심히 강론을 준비하여 정성스럽게 미사를 거행한다. 모든 일에 친절하고 밝은 웃음으로 신자들에 게 다가가 따뜻한 손길을 건네며 내가 가진 역량을 다 보여 주 고 싶다. 참 곱다. 신자들이 나를 볼 때마다 행복해하는 순간에 는 더 그렇다. 신자들은 새 본당신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새 로워진 전례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말씀 하나라도 놓 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할머니는 내가 평화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연예인 신부님이 오셨다고 좋아하신다. 가벼운 칭찬이라는 것을 알지만 신자들이 나를 밉상으로 보 지 않는다는 점에서 흐뭇함을 느낀다. 별명을 지어 주는 신자 도 있다. 신승훈 닮은 것 같은데 '살찐 신승훈'이란다. 지난해 에 체중을 좀 줄여 한결 가벼워졌는데, 동기신부들의 말인즉 "너 본당 가면 그 몸 유지하나 보자." 했던 말이 결국 현실이 되 고 말았다. 신자들의 사랑을 먹어서인지 몇 달 사이에 10킬로 그램이나 늘었다. 신자들의 사랑이 모두 살로 변한 것인지 모 르겠다. 어쨌든 모든 것이 신자들의 사랑으로 생각된다. 본당 살림을 하면서 신혼집처럼 꾸미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익숙한 신자들은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새롭게 접 한 나한테는 성당 구석구석이 손길이 필요한 공간으로 보인다. 선배 신부님들이 본당에 부임하면 1년간은 절대로 공사하지 말라고 했다. 그 덕담을 잘 지키려고 하는데, 성당을 예쁘게 꾸 미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살 때에는 내 집이라기보다는 잠시 머무는 곳처럼 생각되었는데, 본당은 자연스럽게 내 집으로 느껴진다. 신자들이 편안하게 찾아와 쉬 고 싶어하는 아늑한 집처럼 성당을 꾸미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걸 보니, 정말 나는 초짜 본당신부인가 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일상이 나한테 는 버겁게 느껴진다.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주객 이 전도된 듯 충분한 준비와 시간 없이 급하게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할 때도 많고,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도 많다. 내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 밀어 놓은 일들, 앞으로 마무리 해야 할 일들을 산더미처럼 안고 사는 느낌이다. 주말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그 동안 나한테 주말은 쉼의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가장 바쁜 날이 되었다. 그래도 신 자들을 만나 미사를 봉헌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행복하다. 신 자들이 그 안에서 은총에 목말라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상에 지쳐서 살고 있는 신자들에 비한다면 내 삶은 너무 호화스러운 삶이 아니던가. 작은 발걸음이 큰 걸음의 시작이라고 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당신부의 삶이 내 사제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되면 좋겠다. 여전히 강의 준비와 밀린 원고들이 산적 해 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신자들과 살아가면서 얻는 기쁨과 행복을 간직한다면 한가롭게 삶을 즐기는 여유만큼이나 축복 의 시간이 되도록 주님께 청한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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