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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9 조회수86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4월 9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Do not be afraid.
Go tell my brothers to go to Galilee, and there they will see me.
(Mt.28,10)



제1독서 사도행전 2,14.22-33
복음 마태오 28,8-15

요즘 11일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사회가 참으로 시끌벅적합니다. 각종 공약으로 무성하고 또한 상대방 후보를 향한 비방의 말들을 많이 듣는 요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 후보들은 철저하게 자기주장만을 앞세우지요. 상대방의 공약, 상대 당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고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앞 다투어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니 누가 옳은 것인지, 누구를 정말로 이 지역의 일꾼으로 선택해야 할지 혼란이 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TV 토론회 같은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꽤 긴 시간 동안 토론을 하지요. 그런데 토론은 신나게 하는데 토론회가 끝나도 입장의 변화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듣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니 입장의 변화가 생길 수 없지요. 즉, 제 귀를 막고 입으로만 토론하니 문제의 해결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곳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어떤 힘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지요. 또한 내 속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과 귀를 굳게 닫아둔 채 상대방을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합의점도 나올 수 없는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상대방의 이야기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또한 내 마음은 굳게 닫아둔 채 살고 있는 사회라면 절대로 소통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대신 각종 이기심과 시기, 질투가 난무하는 미움과 다툼으로 가득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전하게 되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수석 사제들은 이 진실을 숨깁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부활하셨다는 진실을 거짓으로 조작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비병들을 매수하고 유다인들 사이에도 거짓 소문을 낸 것입니다.

이 수석 사제들의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것입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를 증명하기 위해 온갖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나의 옳음을 드러내기 위해 약간의 불의도 허용될 수 있다는 세상, 상대방보다 윗자리 오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다 써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 과거 예수님의 부활을 숨기려 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과거 수석 사제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과 위선 속에서는 기쁜 부활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만약 거짓과 위선으로 진리를 숨기며 살고 있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의 부활 체험을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2주 동안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남의 관심을 끌기 위해 2년 동안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데일 카네기).


성가소비녀회 설립자 신부님의 말씀. 감동입니다.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클래식의 유명 작곡가들 존경하고 그들의 곡을 사랑하며 즐깁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러한 작곡을 가능하게 했던 악보의 오선지는 누가 만들었는지, 또한 지금도 우리가 보고 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라는 음계는 또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말이지요.

이를 발명한 사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중세의 수도자들이 만들었다고 내려오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누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발명한 그 누구는 이렇게 큰 업적을 남기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니 불행한 삶을 산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유명하지 않았을 뿐인 것이지요. 그들은 이 세상의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주님께 분명히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의 배경보다는 주인공을 맡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미움과 다툼이 사라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제거하는데에만 온갖 신경을 다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님의 사랑이 서로서로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요?

주님의 사랑이 이 세상 구석구석 퍼지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삶이 아닌, 배경의 삶을 살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만 급급한 것은 아닐까요? 영화도 주인공만 있으면 재미없습니다. 감초 역할을 하는 많은 조연들이 있어야만 재미있으며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배경이 되어주는 삶. 이 삶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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