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0 조회수1,02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4월 10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Stop holding on to me,
But go to my brothers and tell them.
(Jn.20,17)

제1독서 사도행전 2,36-41
복음 요한 20,11-18

‘011000101001010’

이것이 무슨 숫자일까요? 사람의 유전자 코드를 나타내는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의 유전자 코드는 ‘011000101001001’ 즉, 맨 마지막 코드 하나만 다를 뿐 다른 코드는 모두 똑같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과 개는 유전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행동함에 따라서 사람의 모습이 아닌, 개의 모습처럼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욕을 할 때, 개에 비유해서 하는 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네요.

따라서 우리는 마지막 코드가 ‘0’이 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사람 고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특성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것도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 이타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직접 보여주셨지요.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사랑을 보고 기억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내 이웃을 위한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사실 가족도 아닌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또한 남녀의 차이가 유별났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았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의 행동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체험했고, 그래서 이러한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모습을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전달자가 되는 영광을 갖게 됩니다.

사랑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아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사람이 아닌 동물처럼 생활하려 합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려 하고, 끊임없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다른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던 사랑에 동참해야 예수님을 더욱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만히 서 있을 때 지나가는 기차를 보십시오. 마치 빠른 야구공이 지나가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기차와 같은 방향으로 힘차게 뛰어가거나,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 보십시오. 아마 객차 안이 보이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이 흐릿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누가 타고 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내가 기차에 직접 올라타면 편하게 그리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주님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느끼고 체험하고 싶다는 분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내가 주님이라는 사랑 열차에 직접 올라타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을 진정한 사람답게 만드는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요? 이 사랑만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대의 꿈이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가엾은 것은 한 번도 꿈을 꿔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에센바흐).


지난 주일에 있었던 예비신학생 모임. 모두 훌륭한 사제가 되길~~~



주님과의 관계
 

시소 놀이를 떠올려볼까요? 가벼운 아이와 무거운 어른이 시소의 양쪽에 앉으면 아이는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이래서 어른은 아이 쪽으로 다가가 앉습니다. 균형을 잡아 아이와 어른 사이를 안정시킵니다. 서로의 몸무게와 중심과의 거리를 조율해 맞추는 것입니다. 이렇게 맞춰나가는 것은 힘이 아니라 조율이며, 조율은 상대에 대한 배려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럴 때 시소는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만약 내 자신만을 드러내려고만 한다면 주님과의 관계는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내 욕심과 이기심이 크면 클수록 그 무게로 인해 역시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바로 나를 낮추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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