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27) ‘성찬 제정과 축성문’
구원은 인간의 참여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마태 18,20)에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와 우리의 삶 안에 현존하신다. 그 가운데서도 성체와 성혈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방식은 가장 특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한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 내어주심으로써 우리 가운데 신비롭게 머무시길 원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5-56) 감사 기도에서 사제가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도록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 그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믿음을 간직하고 고백해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봉헌물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말을 하지만, 그 말의 효력과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이는 내 몸이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헌물들을 변화시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유다의 배반에 대한 강론, 1,6) - 제대 위에 놓인 미사 경본. 박원희 기자.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 새 「로마 미사 경본」(제3표준판)의 각 모국어 번역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감사 기도의 축성문에서 라틴어 원문의 “pro multis”의 번역과 관련된 문제였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 안에서도 “모든 이를 위하여”에서 “많은 이를 위하여”로 바뀐 이 표현은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하신 성찬 제정 말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 마르 14,24 참조). 한편 루카 복음에서는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20)라고 말한다. 일찍이 교회는 예수님의 성찬례 제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두 성경 문구를 결합시켜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란 형태로 오늘날의 감사 기도 제1양식인 로마 전문 안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개혁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다른 모든 감사 기도에도 반영되었다. 따라서 “많은 이를 위하여”란 표현은 앞서 보았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전례문을 변형 없이 원문에 충실하고 정확하게 옮기고자 한 결과로 우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닌가? ‘많은 이를 위하여’라는 번역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구원의 보편적 가치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기존 모국어 미사 경본에서 ‘많은 이’가 ‘모든 이’로 번역되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물음들이 주된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곧 ‘많은 이’를 ‘모든 이’로 해석하여 번역함으로써 주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의 보편성을 모호함 없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2년 독일 주교회의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점을 인식하면서도 “pro multis”에 대한 더 정확한 번역으로 “많은 이를 위하여”란 표현을 사용하도록 강조하셨다. 그리고 신자들을 위해서 그 의미를 설명해 줄 세심한 교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여기서 표명된 교황의 관점들은 ‘pro multis’의 번역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2006년 경신성사성의 회람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해 주었다. 이 관점들을 종합하여 “많은 이를 위하여”란 표현이 지닌 의미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의 성찬 제정 말씀에서 비롯한 “많은 이를 위하여”란 말은 전례문 안에서도 하나의 해석의 형태가 아니라 성경의 표현 그대로 정확히 번역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대한 교회의 특별한 존중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이 표현과 함께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주님의 종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고 예언자들의 말이 당신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셨다.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이사 53,11). 곧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존중과 성경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충실함이 “많은 이들을 위하여”란 표현의 사용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주된 이유이다. 둘째, 이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는 신앙의 가르침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찬례란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많은 이를 위하여”란 표현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구원이 인간의 의지나 참여 없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성찬례는 우리가 신앙으로 맞이해야 할 은총의 선물이자 살아야 할 사랑의 신비인 것이다.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2월 3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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