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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웃 종교인들과의 대화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1 조회수409 추천수1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4. 세상 속 사람들
이웃 종교인들과의 대화

'종교 박람회'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사회는 다종교 사회다. '종교'가 단순히 제도적인 신앙 조직이기 전에 한 인간이 겪는 삶의 비구원적 현실 체험, 곧 갈등과 불안, 고통과 죽음을 넘 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살게 하는 원천이라고 한다면, 한 사회 안에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돌과 갈 등의 요소라고만 할 수는 없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뜻하지 않게 여러 종교 학자들 모 임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종교인들 사이의 대 화는 다른 종교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 는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할 뿐더러 서로가 사용하는 용어마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종교적인 언 어의 틀을 놓고 진솔하게 인간적으로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 종교인이 찾고 있는 목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사회 안팎에서 종교가 사람들을 일치시키기보다 갈 라놓는 일이 더 많아 안타깝다. 종교란 하나의 신념 체게에 속 하는 것이어서 '신앙'이라는 '절대적 확신'을 요구하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신앙 체계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자 신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일 수 있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배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사회적 미덕이 된 오늘에 비추어보면 결국 나의 확신과 신앙만큼이나 내 이웃의 확신과 신앙 또한 소중 하고 절대적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종교 상호 간의 '다름'을 상대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과 이 다름을 절대화하는 '종교 다원주의' 사상은 구분할 필요 가 있다. 종교 다원주의는 자칫 각 종교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무차별적으로 동일화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흔히 생각하 듯 '종교는 결국 다 같은 것이다.'라든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다.'라는 식의 논리는 개별 종교들 이 오랜 전승 속에서 찾아온 고유한 신앙 유산을 무가치한 것 으로 폄하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가 이웃 종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종교 간의 성숙한 대화 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 다. 사실 '구원', '평화', '해탈', '영생'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완성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종교 용 어들 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절대적 신의 도움이든(은총), 불 성의 깨달음이든(해탈), 온전한 자기가 되는 길은 신神과의 관 계나 세상과의 인연을 떠나 '홀로서기'를 통해서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모든 종교는 각기 삶의 신비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간직 해 왔다. 전혀 다른 문화와 시대 속에서 발견하고 발전시켜 온 고유한 종교적 가치들은 하나의 종교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인생 과 세상의 신비를 깨우져주는 표지판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 서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종교 간의 상호 존 중과 대화를 촉구하면서,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 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 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비그 리스도 2항)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웃 종교인들과의 대화는 서로가 추구하는 종교적 태도가 '비움'이고, '이타주의적 삶'이라는 사실을 함께 인정할 때 빛 을 발한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신성을 절대화하지 않고, 오히 려 인간의 불완전성을 고백하는 '타자지향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나 불교 의 '자비', 원불교의 '정신개벽'이 모두 타자를 향해 자기를 버 리고 나누며 회심하는 종교적 표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다. 불교가 진흙탕 속에서 고요히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 움에서 세상의 집착을 벗어버리고 수행을 통해 해탈을 이루는 것을 표현하는 점이나, 원불교가 우주 만물의 궁극적 진리로서 하나의 원원이라는 상징을 통해 생활 속의 수행을 강조한 점도 이와 맞물려 있다. 실상 이들은 인간의 삶이란 본래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 을 버리고 비우는 일 없이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가장 기 본적인 진리를 말해 주고자 한다. 그리스도교가 예수님의 십자 가를 중요한 신앙의 표징으로 삼는 이유는 십자가 위에서 인류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자기 비움'이 완전하게 드러났고, 십자 가를 짊어지는 것이 참된 인간의 완성임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 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듯이, 종교인들 각자가 참된 '자아'와 '구원'을 찾아내는 고유한 종교 적 감각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이 가톨릭의 엄숙함과 거룩함이 수 있고, 개신교의 활발함과 열정일 수 있다. 또한 불교의 조용 함과 자연 속의 평화일 수도 있다. 각 종교들의 고유한 분위기 와 종교인들의 신앙 감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직접 만 나서 대화하고, 서로 종교적 체험을 교류하는 '몸의 소통'이 필 요하다. 한 번도 스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은 불교 를 이해할 수 없다. 성당이나 예배당에 가봤지만, 미사나 예배 시간에 또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미하는 신자들과 성직자 - 목회자 - 수도자들의 표정과 시선, 손길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한다.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은 21세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 독일의 신학자 한스 큉은 '종교 산의 대 화 없이는 결코 인류의 평화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서로의 종 교를 깊이 이해하고 종교적 신념이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이들 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더 깊고 넓 게 확장하는 노력이야말로 종교 간의 대화가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류가 처한 공존과 생존의 문제, 참된 정의와 평 화를 이루는 일, 죽음의 문화 속에서 생명과 상생의 문화를 만 들어 가는 일 등 공동선을 향한 종교인들 간의 협력 또한 세상 의 평화와 조화를 찾는 종교인들의 궁극 목표이기도 하다. 생태 계 보호를 위해, 생명문화와 정의를 세우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힘을 모으는 모습에서 종교인들이 함께 찾는 '새 하늘과 새 땅' 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종교적 배타성 또한 편향서 의 문제는 단순히 정치적 이슈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가 정과 사회 안에서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 이웃 종교에 대한 몰이 해와 편견은 개인에게 큰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사회 질서까지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가정의 신앙교육과 결혼 - 제사 - 장례 - 이혼에 이르는 인간사의 중대한 기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녀교육에 열을 올리면서도 신앙의 유산을 전해 주지 않거 나, 가족 간의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는 종교적 관용과 인내 상실, 우리 민족의 마음 깊이 뿌리박힌 조상에 대 한 공경과 예절, 한恨을 풀고 복福을 나누려는 종교적 심성을 신앙 속에 토착화하려는 노력 없이 교리적 자구에 매달려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다종교 사회를 살 아가는 종교인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모두가 더 깊이 종교적 삶의 가치를 깨닫고, 우리 시대가 찾 는 '성공 신화'를 종교들이 가르치는 인생의 신비와 가치 안에 서 재발견하기를 희망하며, 종교인들 상호 간의 대화가 앞으로 도 다양한 사회적 계층과 장소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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