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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1 조회수684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그러나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루카 24,13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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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복음은 그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아 보지를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슴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이 부활 이전과 달라졌셨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던 것으로 이 주장은 거의 인정되어지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 모습이 변화되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약간의 다른 시각을 가지고 여기서 사견임을 전제로 제시한다. 어제 복음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고 하셨다. 이는 부활의 완전하고도 결정적인 마지막 상황은 아직 남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전 말씀에서 잠시 살펴 보고자 한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있기 때문이다.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요한 14,3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죽음의 신비를 통과하실 때에는 죽음의 권세가 하느님의 영원한 시간 안에서 잠시 '이 세상의 우두머리'로 되는 것이다.

지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는 영적으로 눈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이 달라지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를 못하였다기 보다는 이 세상의 전 차원이 변동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말씀과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있기 때문이다"말씀간의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자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지 못한 까닭에 대하여 부활을 음해하려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서로 다른 사람이다'하고 소문을 내기도 한다.

이는 이미 그런 징조가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다. "셋째 날까지 무덤을 지키도록 명령하십시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내고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기만이 처음 것보다 더 해로울 것입니다” 
고 수석사제들과 지도자들은 경비병들에게 돈으로 매수하여 시킨 일이다.

여하튼 이 모든 일들은 세상의 우두머리가 잠시 죽음의 권세로 이 세상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할 것이다. 다시말하면 차원이 다른 세상의 변동이 잠시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영적인 차원에서 다시 말한다면 이러하다. 즉, 죽음의 지배자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에서부터 지금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기 전까지' 세상 권세를 잠시 쥐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죽음의 차원 아래에 놓여진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닫히게 되었기 때문에 부활 이전의 예수님 모습이라도 바로 알아보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할 것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 12)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 (요한 12, 35 - 36)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당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어둠의 권세 곧, 죽음의 세상 우두머리의 지배 아래에서 당신 생명의 목소리로 어둠 속에 있는(무덤 밖에 서서 울고있는)  '마리아'의 이름을 사랑으로 불러 주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는 성경을 설명하시고 나서 식탁에서 당신 생명의 빵을 떼어 주시며 어둠 속에 갇힌 눈을 빛으로 열어 주셨다. 

그만큼 죽음의 권세에 의해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현대의 시대에서는 과연 어떠한지 각성해 보아야 한다. 사실 아직 죽음의 세상 어둠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의 우두머리에 의해 아직 '부활의 빛'을 믿지 않고 '죽음의 어둠' 속에 잡혀있는 것이다. 생명을 전하지 않고 죽음을 찬미하며 죽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 성전주의자들 또한 사람 곁에 붙어서 어둠을 이야기하며 (유혹) 예수님을 죽이고 있다. 율법주의 망령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죽이고 있다는 뜻이다.

말씀과 결합하지 못하는 성전주의자들(율법주의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 곧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에 일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데에는 예수님 말씀과 같다."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요한 8,37)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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