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살과 뼈가 있는 부활 [사랑은 유령이 하는게 아니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1 조회수389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일의 증인이다.”  <루카 24, 35 - 48>

....................................................................................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교리서 298>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으시므로....“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로마 4,17)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에게 부활을 통하여 육신 생명을 주실 수도 있다."   <교리서 366> "죽음으로 육체와 분리되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부활 때 육체와 다시 결합될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에게서 계시된 부활의 진리는 더욱 분명하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마르코 12, 18 - 27>

아뭏든 예수님의 말씀에서나 예수님 자신의 직접적인 '육신의 부활'로써 이는 틀림없는 부활의 진리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여러 말을 할 것이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날 저녁에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마르 16,14>

....................................................................................

< 계 속 >

여기서는 전 날에 이어 계속한다. 말씀과 결합하지 못하는 성전주의자들(율법주의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 곧,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에 일치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데에는 다음의 예수님 말씀과 같다."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요한 8,37>

죽음의 시간에서 부활은 죽음을 이겨내는 생명의 승리이다. 부활의 생명은 결코 지상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은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시는 영광과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리서 646> "그리스도의 부활은 당신이 부활 전에 야이로의 딸, 나인의 젊은이, 라자로 등을 다시 살리신 경우처럼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신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진다. 예수님의 몸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결합하여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과 일치하는 예수님의 어린 양들이다 할 것이다. 부활의 진리를 믿지 않는 이들이나 율법주의적인 성전주의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전을 떠난 이념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형제들이라 부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교리서 65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셨듯이, 부활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게 하는 하느님의 양자 입양을 실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는 것은 본성이 아니라 은총의 선물이다. 양자 입양은 그분의 부활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외아들의 생명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교리서 655> 그리스도의 부활 ─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 ─ 은 장차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0-22). 이 완성을 기다리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의 마음 안에 사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앞으로 올 세상의 힘을 맛본”(히브 6,5),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려 간다. 이는 그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2코린 5,15)

예수님의 형제들은 이제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성전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사는 삶이다는 뜻이다. 성전주의적인 삶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전 생활이 가식적인 죽음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리서 658>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한 첫 사람”(콜로 1,18)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우리 영혼을 의화시키심으로써, 장차에는 우리 육신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 자신의 부활의 근원이 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끄시며,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그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성전 생활이 단지 자신을 위한 반복적인 일상의 일이다면, 거기에 머물러 있는다면 성전은 당신에게 바로 강도의 소굴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다. '그 성전'은 당신이 살아갈 하나의 세상적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살과 뼈가 있는 부활"
이란 지금 여기서 부터 예수님의 (살과 뼈가 있는) 부활을 사는 삶을 말한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사는 삶, 행동하는 사랑의 삶이다. 사랑은 살과 뼈가 없는 입으로(말로) 하는게 아닌 것이다. 성전주의 정신, 이념주의 정신, 유령으로 하는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그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할 것이다." 이 삶이 분명한 우리 자신의 부활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곧, '예수님의 어린 양들'의 삶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