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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연꽃, 삶을 대하는 두 개의 상징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2 조회수619 추천수1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4. 세상 속 사람들
십자가와 연꽃, 삶을 대하는 두 개의 상징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최근 일부 보수적 개신교가 오로지 말씀을 '듣는' 신앙에 몰입 해서 가톨릭과 불교의 종교적 상징들을 우상으로 치부하고 훼 손하는 일이 간혹 있긴 하지만, 종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 의의 경쟁은 한국 문화의 특성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톨릭과 불교는 서로 통하는 면이 없지 않다. 신자들이 두 종교를 택하는 이유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서고, 성직자 수도자들은 독신생활을 하며, 세상에 보이는 것 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영적 수행의 삶도 비슷하다. 교회와 사찰은 언제부터인지 성탄절과 석탄일이면 서로 축하 현수막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같은 수도자라고 수녀님들은 입 장료 없이 사찰을 출입할 수 있는 특혜도 준다. 시끄러운 도심 에 살면서 고향처럼 포근한 자연 속 산사나 고요함과 거룩함 을 느끼게 해주는 성당에 들어설 때의 느낌도 비슷하다. 최근 에는 가톨릭 신자 중에 불교의 선禪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 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표현하는 가장 큰 상징은 십자가와 연 꽃이다. 이 둘은 우리가 사는 세상 뒤편에 있는 실재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가지 방식을 대표하는 강력한 종교적 상징인 동 시에 삶과 죽음에 관한 근본적 의문을 서로 다르게 접근하는 길을 보여 준다. 먼저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현하는 큰 상징은 십자가다. 십자가는 인간이 처한 극한의 절망과 모순의 상징 이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 위에서 인간이 겪어야 할 처절한 고 통과 죽음의 쓴맛을 보았고, 군중의 모욕과 야유, 단말마의 고 통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는 하느님 아버지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라고 절규하셨다. 예수님의 십자 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 는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까지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는 예수님의 신뢰에 찬 고백이 없었 다면 부활은 그저 헛된 희망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예수님은 고통이 하나의 현실임을 보여 주셨다. 이와 반대로 불교 신앙을 상징하는 연꽃은 십자가와는 사뭇 다르다. 연꽃은 더러워 보이는 물에서 자라지만 꽃이나 잎에 는 그 더러움을 조금도 묻히지 않고 우아하고 단아한 자태로 물 위에 떠서 사람의 마음을 끈다. 이렇듯 연꽃은 진흙탕 같은 고통의 현실에서도 초연한 깨달음의 세상을 상징한다. 인생의 신비는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인간의 집착에서 생긴다는 것 을 깨닫는 것이 참된 해탈의 출발점이라고 가르치는 불교의 정신이 연꽃이라는 상징에 담긴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 心造', 곧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 르면 고통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현실이 과연 그럴까? 불교가 가르치듯 고통은 마음의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일까? 연꽃처럼 고통의 세계를 초월하여 깨달음의 삶을 추구하는 것과 현실의 고통을 당당하게 맞서는 십자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연꽃과 달리 고통스럽지만 당당 하고 힘 있게 땅 위에 솟아 있다. 때로는 거칠고 험상궂고 비 극적으로 보이는 십자가가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십 자가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모순적인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 로 보여주는 역설적인 상징이다.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십 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선천적 장애아를 키우 는 어머니, 장애를 딛고 희망을 살아가는 이들, 가난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 철거민들과 소외된 이들의 애환을 몸 으로 겪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십자가는 자신을 억누르는 고통의 상징이지만, 예수님은 십자 가의 고통이 회피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신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과 모순을 짊어짐으로써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임을 가르쳐 주신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근래에는 불교가 그리스도교보다 현대 인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죄의 현실을 짊어짐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현대인들에게는 짐 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수행을 통해 인간의 집착 을 벗어버리는 종교적 태도가 고통의 현실을 짊어지는 것보다 훨씬 세련돼 보이고, 감성적인 현대인에게 맞는 것 같다. 연 꽃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거칠어 보이는 십자가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마음의 문제로 보지 않고, 현실로 바라보는 독특한 영적 감각에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깨달은 사람이 갖는 연민이나 수행을 통해 얻은 정신적 평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현실로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인격적 결단에서 시작되기 때문 이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신"(필리 2,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단순히 탐욕과 집착을 떨쳐버리는 마음 수행에 머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 신' 예수님의 결단에서 십자가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십자가는 행동하는 신앙의 상징이다. 4대강 개발사업으로 자행된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종교인들의 노력이나 사회 의 그늘진 곳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신앙인들의 모 습처럼 고통과 모순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그리 스도인들의 십자가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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