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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점占' , 좀 보면 안 되나?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3 조회수586 추천수3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4. 세상 속 사람들
'점占', 좀 보면 안 되나?

나의 작은 누이는 결혼 후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다. 결 혼 전에 오랫동안 앓은 천식과 타고난 약한 체질 때문인 것 같 다. 명절 때마다 네 명의 자녀를 거느린 큰누이를 부러운 눈으 로 바라보는 매형 이상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누이의 마 음은 간절했다. 하루는 작은 누이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안 부와 함께 머뭇거리다가 불쑥 "나 점占 좀 보면 안 되겠니?" 했 다. 아이를 갖고 싶은데 자기 팔자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포 기하고 입양이라도 하겠단다. 신부에게 물어볼 말이 따로 있 지. 솔직히 동생의 처지에서 보면 오랫동안 누이가 소망했던 일인데, 그까짓 것 점 한번 본다고 세상이 무너지겠나 싶었지 만, 차마 내 입으로 "그냥 한 번 보슈."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다음 해에 기적적으로 임신해서 지금은 '슈퍼 울트라 캡숑 짱'이라고 불리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로 성장했으니 놀랍기만 하다. 초등학교 교사인 여동생은 결혼 전에 같은 학교 선생님의 끈 질긴 구애를 세 번이나 거절한 적이 있다. 깡마르고 말 많은 그 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누이는 '5분 대기조'로 자 신을 챙기던 그의 마음에 흔들려 결국 '기도의 달인'이신 어머 니께 부탁을 했다. 이 남자를 배우자로 맞아들여도 될지 9일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정성스런 기도 끝에 족집 게 같은 응답이 나왔다. "네 뜻대로 하여라." 그렇게 해서 유학 중에 잠시 귀국한 내 주례로 동생은 그 사람과 운명 공동체를 형성했다. 동생 부부는 팔삭둥이로 세상에 나와 인큐베이터에 서 자라다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쌍둥이 아들에다, 셋째 까지 아들을 낳았다. 동생은 무려 6년간 육아 휴직을 보낸 후 에도 '철밥통' 초등학교 교사이자 억척스런 가정주부로 산다.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이 요즘 유행하는 점술에 많은 관심 을 갖고 있다. 흔히 미신행위로 치부되는 무속인을 찾는 일이 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궁합 - 사주 - 운세 - 토정비결, 최근에는 현대 문화의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는 타로점 같은 '웰빙 점술'에 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으 로 교회가 점술을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십계명의 제1계명에 거스르는 대죄로 규정해 왔기 때문에 신자들이 겪 는 윤리적 갈등은 적지 않다. 어떤 신자들은 이들을 하나의 지 적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고 신앙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반면, 어떤 신자들은 양심상 죄의식을 느끼고 고해성사를 통해 사죄를 청해야 하는 중대한 잘못으로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본래 '점占'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유한한 인간이 겪는 불 안을 극복하려는 종교적 본능에서 나왔다. 점술도 어떤 판단 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신의 뜻이나 주어진 운명을 미리 알 아 불안한 현재를 극복하고 심리적 평정과 종교적 안정을 갖고 자 하는 한국 무교巫敎의 독특한 종교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적지 않은 종교학자들은 점占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순환적 인 인생관에 뿌리를 두고, 신과 세상이 단절된 관계 곧 부조화 를 극복하려는 공통된 초월적 희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점占이 긍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가 톨릭교회가 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데는 그만한 이 유가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우연성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무의미 체험을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게 대한 신앙 안에서 극복해 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운명은 '하느님 의 모상'으로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 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이사 49,1)는 신앙고백에 뿌 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통 의 현실과 약점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 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2코린 12,9 참조) 있게 하는 은 총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성숙한 신앙인은 개연성을 띤 점술에 자신의 운명을 의지하 기보다는, 인격적으로 나를 부르고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 마 음을 둔다. 설령 뿌리 깊은 우리의 점占 문화에 잠시 '외출'을 했다고 너무 절망하지도 않는다. 최소한 그런 행위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을 무시하고, 교회를 떠나겠다는 의도로 저 지른 대역죄가 아닌 이상 말이다. 우리의 나약함으로 잠시 흔 들린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크게 벌하지는 않으실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점보다는 열심한 기도와 이에 응답하려는 의지 적 결단이 신앙인에게는 더 필요한 덕목일 듯싶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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