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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는 빈무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4 조회수689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부활 제2주일 - 교회는 빈무덤

    


 

   제가 신학생 때 이태리 유학할 때 한 이태리 본당 신자들과 버스 두 대로 일주일간 독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하도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하이델베르크에서 혼자 남겨진 적이 있었습니다. 멍하니 다른 것을 바라보다가 그룹이 움직이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그룹을 다시 찾기는 했지만 머문다는 것이 단순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야만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예수님 수난 이전의 교회와 이후의 교회는 사뭇 다릅니다. 예수님 수난 전엔 교회 안에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시는 모습으로 현존하셨지만 그 이후엔 예수님은 더 이상 눈에 보이게 그들과 함께 하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위에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서 머무를 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빈무덤은 예수님이 눈에 보이게 계셨던 자리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빈무덤을 봅니다. 더 이상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곳을 떠나 되돌아가지만, 막달레나는 그 곳에 남아 울고 있습니다. 그러자 천사를 만나고 급기야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와 똑 같은 내용입니다. 단지 마리아를 예수님을 만난 열 사도로 생각하고, 빈무덤을 교회라 생각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토마스라고 여기면 됩니다.

빈무덤은 바로 교회입니다.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 안에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게 계셨지만 이젠 더 이상 그 분은 계시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의 흔적만이 남아있습니다. 이에 토마스는 적응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교회에 머물러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요한은 이렇게 비록 교회가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빈무덤과 같은 교회 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머문다는 것은 항상 그 변하는 움직임에 따라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마치 가이드가 움직이면 그룹이 움직이고, 그 그룹에 머물려면 그 움직임에 따라 자신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이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간 것입니다. 마치 성당 신부님의 방향이 마음에 안 들면 그것을 따라가지 않고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죄가 되지 않는 이상은 자신의 우두머리를 따라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교황의 움직임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제 독신제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식적으로 독신제가 정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천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결정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잠비아 출신 엠마누엘 밀링고 대주교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최초이고 최연소 대주교였음에도 바티칸에서 일을 하면서 통일교를 알게 되었고, 통일교 식으로 한국인인 성순례(마리아)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밀링고 대주교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려고 하자 성 마리아는 바티칸 광장에서 며칠 간 단식 시위를 하였습니다. 자신의 남편 밀링고를 내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이 시위는 이태리 주요 뉴스에 나왔고 한국인들은 이것 때문에 매우 창피를 당해야 했습니다. 급기야는 자신의 불쑥 솟은 배를 가리키며 대주교의 아기를 임신했다고도 주장하는 모습까지 보는 것은 참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임신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배가 많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밀링고 대주교가 교회에 머물기를 원해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몇 년 뒤에 그녀와 다시 재결합했고, 미국에서 살면서 결혼한 사람들을 사제와 주교로 임명하고, 통일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2006년에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당하게 됩니다.

밀링고는 결국 교회 안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변하고 있는 교회를 따라갈 수 없었고 옛 자리에 머물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토마스도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교회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밀링고와는 달리 인내심 있게 교회에 머물 줄 알았고, 그 보상으로 여드렛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시며 교회를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파견하신 이유는 아드님을 통하여 사람들을 당신께로 부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신다는 것은 그들을 통해서 당신께 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 위에 단 하나의 교회만을 세우셨고 그 단 하나의 교회 안에만 머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흩어지거나 갈라지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리되어 나간다면 이는 곧 생명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교회도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이런 예수님의 마음이 잘 표현됩니다.

 

오늘이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공식적인 발현이십니다. 그러나 이 발현 때 토마스는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지 못한 상태이고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도 목격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도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토마스의 믿음을 키워주기 위해 다른 여인들이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처럼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이는 당신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도록 아버지께 기도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토마스 사도에게 개인적으로 발현하셨다면 사도단의 질서가 엉망이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처음에 나타나시고(루카 24, 34) 그 다음에 오늘 모두에게 나타나셨는데, 토마스에게만 따로 나타나신다면 토마스도 베드로와 같은 급이 되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둘이 되어 분열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천 년 후에 이와 같은 이유로 갈라지게 된 것이 바로 동방교회와의 분열입니다. 동방교회는 로마의 베드로의 교황 좌를 인정하지 않고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의 주교를 대등하게 여겨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몸이 하나인데 머리가 둘 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개인적으로 발현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되면 굳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단이 함께 하는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함께 모일 필요성이 없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면 된다는 생각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는 프로테스탄트가 갈라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와 만나 죄를 용서받는 등의 친교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갈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만약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교회를 세우시고 용서하는 권한을 주시며 파견하실 필요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사도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 당신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 교회를 통하여 당신께 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맨 마지막에서는 세 번째로 다시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베드로와 사도들, 또 다른 제자 두 명은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 교회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베드로를 따르지 않으면 예수님과의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과 개인적인 친교를 나누었던 아빌라의 데레사는 돌아가실 때 자신이 예수님을 보고 대화한 것 때문에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끝까지 교회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을 행복해 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딸로 죽는 것이 행복합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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