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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복음. 20,19-3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5 조회수397 추천수3 반대(0) 신고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 자비의 예수님과 파우스티나 성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천년기 첫 성인으로 파우스티나 수녀를 선포하고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하며 교회가 생활의 증거로 하느님 자비를 전할 것을 강조했다.
 
 


교회는 2000년 부활 제2주일부터 해마다 이날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은 전통적으로 ‘사백 주일’로 불리었습니다.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영세자들이 영혼의 결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부활 팔일축제를 지낸 다음 부활 제2주일에 벗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는 이날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거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뜻에 따라,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보여 주신 자비를, 부활의 신비를 기념하고 거행하는 전례 안에서 찬양하고자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제정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전해 주십니다. 성령의 가장 큰 은혜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구체적 행위입니다. 죄의 용서만큼 기쁘고 평화로운 것이 없습니다. 내 죄를 용서받을 때도,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때도.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의 은총 없이 내 죄를 용서받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겸손하게 성령의 은총을 구합시다.

복음묵상

아름다운 일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돌아온 탕자를 아무 탓 없이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요셉이 자기를 웅덩이에 처넣고 미디안 상인에 팔아 버린 형제들을 이집트 궁궐에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는 눈물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도 용기를 내어 우리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이웃을 용서합시다. 하느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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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는 없었습니다. 그는 밖에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무서워 숨어 있었지만 그는 개인적인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에 찬 토마스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못 믿겠다고 선언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토마스는 스승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다시 살아나실 거라면 왜 죽어야 하셨는가? ‘죽음의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부활하셨다는 동료들의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지나친 발언이었습니다.
그런 토마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십니다. 순전히 토마스를 위한 발현입니다. 그러시고는 말씀하십니다.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 말씀에 토마스는 엎드립니다. 눈으로 확인했기에 엎드린 것은 아닙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자기를 위해 ‘한 번 더’ 나타나신 스승님의 애정에 감복했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이론은, 사람을 설득할 수는 있어도 승복시키지는 못합니다. 사랑과 애정만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승복하게 합니다. 이후 토마스는 주님의 사도가 되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는 결코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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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百聞以 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김영수 신부-

보아야만 믿겠다는 토마스의 말처럼 사람은 백번 듣는 것보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인정하고 믿게 됩니다. 하느님을 뵈옵는다는 것은 성서에 나타나 있는 인간의 가장 절실한 갈망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욥기 19, 27)
인생의 의문과 고통 속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분의 얼굴을 맞대고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고, 삶 속에 드리워진 어둠과 혼돈을 벗어나 참으로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찾아 얻고자 하는 것은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뵙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의 창조물을 통해서 당신을 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알아 뵙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업적을 보아야 합니다. 보는 것이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준다 하더라도, 믿음 그 자체가 보는 것을 통해 깨닫는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하느님을 뵙고 싶어 한다면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해야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는 것이고, 바로 그런 하느님을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눈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육안(肉眼)이고, 그것보다 발전된 것이 뇌안(腦眼)이며, 그것보다 깊은 것은 심안(心眼)이고, 가장 심오한 것은 영안(靈眼)입니다.
우리가 지닌 네 개의 눈 중에서 어떤 눈으로 사물과 현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볼 수 있는 내용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육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욕망의 수단으로 바라볼 것이고, 뇌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생각하고 따지는데 필요한 내용을 생각하게 될 것이며. 심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바라보는 현실의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참된 진리를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진리를 보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눈은 모든 사물 안에 담긴 본질인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알아 뵙기를 청하는 이들에게 “와서 보아라”(요한 1, 39)고 하신 것은 보아야만 믿는 나약한 우리 인간들을 위한 하느님의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신앙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 현존하셨던 그 분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토마스와 똑 같은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짊어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는 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수 많은 사랑의 기적들을 통해서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토마스가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의 불신을 드러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보아야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인간의 일반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일 뿐 그 자체로는 토마스를 탓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일입니다. 눈으로 본 것을 믿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보고서도 믿지 않는 것보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몇 가지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그 중 하나는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미처 깨닫지 못해서 항상 그보다 덜 중요한 것만을 찾아내기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그 앞에 덜 중요한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뵙는 일은 감정이나 이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만나 뵈올 수 있으며 부활을 통하여 이루신 승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랑하는 일, 사랑을 위하여 견디어 내는 십자가만이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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