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7 조회수77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4월 17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You must be born from above.'
The wind blows where it wills, and you can hear the sound it makes,
but you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so it is with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Jn.3,7-8)



제1독서 사도행전 4,32-37
복음 요한 3,7ㄱ.8-15

학창시절 시험 기간을 떠올려 봅니다. 참 이상한 것은 시험 때만 되면 영화나 만화, 소설책 등(아마 요즘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게임이겠지요?)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친구들과 함께 놀러갈 생각이 더욱 더 간절해졌었지요. 이렇게 시험이라는 부담과 긴장이 크면 클수록 시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놀이에 더 관심이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이 없으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았고, 실제로 방학하는 날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방학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오히려 학교에 가고 싶었고, 공부하고 싶은 것은 왜일까요? 즉, 공부를 해야 할 때에는 놀고 싶고, 놀고 있으면 공부하고 싶고……. 청개구리 심보를 가졌다고나 해야 할까요?

사실 저만 이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물어보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저와 마찬가지더군요.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젊어서나 늙어서나 일과 놀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루 24시간을 놀이로만 채우면 행복할 것 같지만, 삶 안에 긴장이나 설렘이 없어지기 때문에 전혀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 하네요. 따라서 어떤 균형 관계 속에 살아야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인 것입니다.

무미건조할 수 있는 세속적인 삶 자체에만 매달려 사는 것 역시 옳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속적인 삶을 의미 있고 행복한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 동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선택일 뿐이라고 낮춰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이 세상 삶 안에서 더욱 더 충실할 수 있음은 앞서 균형 관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안에서 스승으로서의 존경을 받던 니코데모와 예수님께서 함께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런데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스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왜 그럴까요? 니코데모는 세상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직 세상의 기준으로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니코데모였지만, 주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상의 기준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삶에 더 큰 중점을 두면서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우리들, 주님의 기준도 잘 모르고 또 실천도 못하는 우리들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상태에서는 주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의 체험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더욱 더 주님을 알기 위해 믿음의 삶을 지향하며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스탕달).


저를 알아보는 분이 계셨던 성당. 아름다운 성당이었습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여행을 하던 중에 어떤 자매님께서 제 앞으로 와서 “신부님이시죠? 평화방송에서 뵈었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성물 축복을 해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는 로만칼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일반 평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또 이번에는 어느 성당에서 미사를 하는데, 그 본당의 주임신부님께서 저를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저 신부님은 꽤 유명하신 분이에요. 인터넷에서 ‘빠다킹’하면 다 알죠.”

그런데 신자석에 있던 분들 중에서 몇 분이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제 글을 계속 보셨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되어 놀랍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미사가 끝난 뒤에 이분들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전에는 로만칼라만 빼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네요. 그러다보니 더욱 더 잘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묵상하다보니 주님께서는 저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보고 계신데, 정작 주님께 올바른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네요.

남에게 보이기보다, 주님께 더 잘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남의 신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신경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항상 깨어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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