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해산의 고통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7 조회수1,163 추천수8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2년 나해 부활 제2주간 화요일 - 해산의 고통

 


 

 김완식 요셉이란 분은 지금은 선교사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처음에는 유명한 대무당이었고, 그 다음은 대순진리회의 능력 있는 선사였습니다. 가톨릭 신자 1800여명을 대순진리회로 끌어들일 만큼 악의 세력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게 되고 자신이 대순진리회로 끌어넣었던 가톨릭 신자 1540명을 다시 빼냈고 그래서 대순진리회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대법원까지 가는 싸움을 하는 등의 회개하는 삶으로 변화하게 된 데에는 한 여인의 헌신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남양성지 앞에서 해산물을 파는 할머니셨습니다. 김완식씨는 그 할머니도 대순진리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 집에 가서 일도 도와주시는 등의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집에 오면 성수를 가져와서 자신의 집 구석구석에 뿌렸고, 여주 대순진리회 본원으로 데리고 갔는데도 거기에서도 걸어 다니면서 여기저기에다 성수를 뿌렸습니다.

이번엔 그 자매님이 남양성지에 들어가 보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발을 떼려 해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 할머니가 발을 손으로 툭 건드리니 그 때서야 발이 떼어졌다고 합니다. 김완식씨는 너무 무서워 집으로 도망 와서 영적인 투쟁을 하기로 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투쟁에서도 지게 되는데 자기가 기도하는 것보다 그 자매님이 항상 더 많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형제도 그 자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방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어느 날 다시 남양성지에 들어갔는데 자신 안의 마귀가 옷을 다 벗으면 이 자매가 도망칠 것이라고 하여 그 자리에서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성지를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자매님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차 옆에 태웠는데 이 분은 차에서도 양팔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자매를 죽이라는 마귀의 말을 듣고 차를 일부러 전봇대에 박았고 그래서 차가 전복되었는데도 그 자매님은 뒤집힌 상태에서도 의자에 매달려 양팔묵주를 여전히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성지에 들어가서 신자들이 그 형제를 데려다 함께 기도를 해 주었고 그 형제는 온 몸에서 악령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이 살아나 김완식 형제에게 대순진리회로 빼내갔던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찾아오라는 소명을 주십니다. 그 이후로 그 형제는 세례를 받고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을 새로 나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희생도 요구하십니다. 부모의 고통과 희생 없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자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 생명은 한 생명이 소진될 때 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누가 회개하여 새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기도한 사람이 없을 수 없습니다.

 

유학 가 있을 때 많은 성지 순례자들이 오고 가끔은 저도 그들과 함께 합니다. 처음 로마에 도착한 분들은 장시간의 여행 탓인지, 낯선 곳에 오게 돼서인지 매우 피곤해 보입니다. 저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만 쌩쌩합니다.

미사도 해 주고 가이드도 해 주고 고해성사도 들어주면서 함께 다니다보면 어느 샌가 저는 초죽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빨리 쉬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순례하시는 분들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 가시고 은총을 많이 받아 얼굴이 빛나고 힘이 넘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또 다른 누군가의 생명은 소진되어야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고통을 겪어야 하고 키우기 위해서도 많은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 희생 없이 태어나거나 자란 아이들은 세상에 당당하게 설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새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 당신은 모세의 뱀처럼 높이 달려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례를 시작으로 매일 새로 태어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 탓입니다. 그리스도는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고 우리는 그 죽음으로 새로 난 곡식들입니다.

 

초는 자신을 태움으로써 주위를 밝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영 어둠 속에서 죽음을 무서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때는 밤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통하여 여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리옷 유다는 결국 빛과 함께 있다가 밤에 예수님을 배반하러 나갑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음에도 우리 자신이 그 은총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분의 죽음이 헛되고, 그런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눈을 뜨고 있건, 눈을 감고 있건 초는 자신의 죽음으로 주위를 밝힙니다. 우리의 희생이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빛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 죽음은 가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듯이 결국 죽음 자체는 나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