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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18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18 조회수789 추천수1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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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 요한 3,16-21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한없이 부드러운 하느님>

 

 

    같이 생활하던 아이들이 ‘초대형 사고’를 저지를 때 마다 보호자 신분으로 법정에 나가본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정말이지 특별한 가정법원 재판장님을 만났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그분의 모습은 재판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멘토’, 따뜻한 동반자, 자상한 선생님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얽히고설킨 아이들의 복잡한 가족관계에 대해서 이것 저 것 물어봐주고,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특기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이번에 훈방되면 이렇게 저렇게 한번 노력해보라며 자상하게 타일러주고...

 

    그 재판장님의 따스하고 정겨운 모습에 감동받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그분의 자상한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어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에게 주어진 최우선적인 지상과제는 단죄나 심판이 아니라 사랑과 구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하느님 상은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 우세했습니다. 끝도 없는 인간들의 배신과 거듭된 죄, 우상숭배 앞에 크게 진노하시며 벌주시는 심판과 단죄의 하느님이 그리도 두려웠습니다. 정해진 율법 조항에 의거해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나 악행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시는 징벌의 하느님 얼굴을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딴 판이었습니다. 그분이 공생활 기간 내내 입에 달고 다니신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단죄가 아니라 구원!”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늘나라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더없이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여행길의 절친한 동반자로, 끝도 없이 기다리고 용서하는 그런 모습으로 메시아께서는 이 땅위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심판하실 권한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권한은 전혀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용서와 자비, 희생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인류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앞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을 향해 기쁜 얼굴로 다가서는 이들에게는 모두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 끝끝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멀리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빛을 등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단죄와 심판의 도마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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