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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0 조회수93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4월 20일 부활 제2주간 금요일



"Where can we buy
enough food for them to eat?"
(Jn.6,5)


제1독서 사도행전 5,34-42
복음 요한 6,1-15

한 가지 공지사항 하나 말씀드립니다. 제가 내일에 새벽 묵상 글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성소후원회 지구장들과 임원 MT를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소후원회 지구장들과 임원들 모두의 단합을 도모하고, 올해 남은 시간들을 더욱 더 잘 보내기 위한 MT를 오늘 새벽에 떠납니다. 따라서 내일에는 새벽 묵상 글이 없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은 “빠다킹 신부는 또 놀러가?”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MT는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성소국 업무로 가는 것이니 그런 서운한 말씀은 하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제 라디오를 우연히 듣다보니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하긴 이 말을 4월이 되면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잔인한 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저 역시 이 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즉, 마치 4월 자체가 잔인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생각에 그런 말을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T.S. 엘리엇의 ‘황무지’라는 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시를 찾아보고는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생명이 새롭게 움트는 4월. 모든 생명체들은 겨울 내내 땅 속에 있으면서 편하게 가만히 있으면 되었지만, 이제 4월이라는 봄이 되어 땅 속 밖으로 생명체를 피워야 하는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겨울에는 평화로웠지만 다시 힘들게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뜻도 모르고 그냥 ‘4월은 잔인한 달이다’라고 규정했었던 제 자신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잘 알지도 모르면서 그냥 단정하고 말해버렸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에게 또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빵의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장정만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였으며, 또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보고서는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모시려 합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일할 필요도 없고, 배고플 걱정을 할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봉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큰 사랑이 내려질 수 있었음을 기억할 때, 우리의 봉헌 없이는 하느님의 사랑도 기대하기 힘든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임금으로 삼으려는 군중을 피해 산으로 물러가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그들과 굳이 함께 하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기준이 마치 하느님의 기준인양 말하고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길의 방향성은 나를 중심으로 바깥과 안으로 향합니다. 밖으로 난 길은 지도를 읽으면서 걸어가면 되지만 안으로 향한 길은 오로지 듣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요(김홍기).


시간이 가지 않아 비싼값을 주고 수리했던 시계.
그런데 이틀만에 또 서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고장났나 싶어서 다른 시계방을 가서 확인했더니,
건전지가 다 되어서 멈춘 것이라고 하네요.
이럴 때에는 어떻게?



시간이 없어서....
 

어제 강의를 가는데 길이 꽉 막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차의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초조하게 빨리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태우다보니 시간이 번개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강의를 갔을 때 체험한 것인데요. 생각보다 도로가 잘 뚫려서 목적지에 너무 빨리 도착한 것입니다. 강의 시작 시간까지는 1시간씩이나 남았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미리 기다리는 상황이 되니까 시간이 정말로 지루하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긴 어떤 일에 몰두해 있으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지만, 헛된 공상에 사로잡혀 빈둥거리고 있으면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가지요. 또한 재미있는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지만, 재미없는 일을 하면 시간이 마치 멈춰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간의 모습을 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는 서로가 다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각자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느냐에 누구는 길게 또 누구는 짧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은 결국 ‘나태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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