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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을 증거하려면?^^*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2 조회수468 추천수1 반대(0) 신고

    ♡ 부활을 증거하려면? ^^* ♡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부활 신비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깊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한 주간이 되셨나요? 형제 자매님, 오늘은 부활 제3주일입니다. 오늘 액자 사진에서도 느껴지듯이 우리 주위의 나무들도 어느 듯 잎이 돋아나고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과 그 신앙으로 말미암은 기쁨도 그만큼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바람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당황하는 모습과 그러한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자상한 배려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유령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손과 발을 만져보게 하시고 음식도 먹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쉽게 “사도들은 참 우둔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그렇게 믿지 못할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라는 사건은 인류 역사 안에서 체험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자상한 배려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제 1독서에서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을 죽이고 말았지만 하느님께서 그분을 다시 살리셨다고 하면서 사도들이 다 그 목격자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들도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온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잘못을 범한 것은 무지 때문이었기에 그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설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서느냐, 그냥 잘못된 길을 계속 가서 결국 멸망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제2독서에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곧 우리들에게 하시는 부활증인의 말씀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편지를 썼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느님을 사랑해드리겠다는 열망이 강했지만 쉽게 그 방법을 찾지 못했었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으면서도 많이 외면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죠? 그리고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것도 좋은 핑계거리였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저를 보고 “참 잘 산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제 속은 모르고 제 껍데기만 보고 하신 말씀들이죠. 그런데 제가 1년 6개월 정도를 이태리에 있는 포콜라레 운동의 사제학교에서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학교는 로삐아노라는 작은 마을 아래에 있습니다. 주말이면 이태리 각지에서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작은 마을을 방문합니다. 그들은 보통 1박 2일을 그 소도시에서 지내는데, 떠나면서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제야 만났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 계심을 확신할 수가 있다.” “신이 죽었다고 외쳤던 내가 바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하느님을 찾았다.” 등등의 소감문을 남겨 놓습니다. 형제 자매님, 그 소도시에 강론을 아주 잘하는 사제가 있어서 방문객들이 그렇게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그 소도시에는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정말 예수님 대하듯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 방문객들을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아니 엄격히 말하면, 예수님 말씀대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들 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방문객들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그 후로 제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성서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내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강론을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강론을 잘 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미사 때 제 강론을 녹음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내주는 열성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번도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요즘은 말씀을 묵상하면 내가 오늘 이 말씀을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만나는 사람을 잘 사랑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것이 어떤 강론보다 더 힘차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만나는 사람들을 잘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한 주간 동안도 먼저 우리가 기쁨을 누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잘 증거할 수 있도록 내가 만나는 형제를 잘 사랑하도록 노력합시다. 하양 신학관에서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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