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정표와 표징(Sign) - 4.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3 조회수53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4.23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사도6,8-15 요한6,22-29

 

 

 

 

 





이정표와 표징(Sign)

 

 

 

 

 



어느 한방의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다이어트에 앞서 ‘마음의 허기(虛飢)’가 문제요,

마음의 허기가 해소되면 저절로 음식은 절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허해, 마음이 배고파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 하니 저절로 비만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기를 해소하는 데

‘영원한 생명’의 체험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오늘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다는

사도행전의 마지막 대목 역시

영원한 생명을 체험했을 때의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간혹 미사 중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는 분들을 대하는 데

미사 중 영원한 생명을 체험했음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이정표와 표징’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길을 찾아 가는 데 이정표가 필수 이듯이

우리의 평생 순례 여정의 삶에도 이정표는 필수입니다.

이정표는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표징이 됩니다.

 


매일의 미사와 시간경이

우리 수도승들에게 하느님을 가리키는 제일의 이정표이자 표징입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하느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표징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도 있듯이

손가락이 표징 하는 달에 시선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눈이 열린 자들은 이정표가 표징하는 하느님께 눈길을 돌립니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 고흐가 친구와 함께 미술 전시관에 갔다가

  렘브란트의 작품 ‘유대인의 신부’(1665년 작) 앞에 서서

  몇 시간을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친구에게

 “내가 이 그림을 2주 동안 계속 감상할 수 있다면

  나의 수명 중에 10년을 줄여도 좋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바로 이게 영원한 생명의 체험, 하느님 체험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그대로 이정표의 표징 역할을 했고

눈이 열린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체험한 것입니다.

 

 
- 어느 교수는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책을 통해 영원을 체험한 교수임이 분명합니다.

이 책 역시 그 교수에게 영적체험의 이정표이자 표징 역할을 한 것입니다.

 


- 조선 문인화(文人畵)의 정수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에서

  진경(眞景)은 눈에 보이는 단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 생긴 ‘참 눈’으로 일체를 보는 것이다.

  겸재가 진경으로 산수를 보았듯,

  추사가 세한(歲寒)을 보듯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

 


영적 체험이 우리의 눈을 열어 ‘참 눈’으로 모두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하느님 향한 이정표와 표징을 볼 수 있는 참 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빵에 눈이 가려 표징을 보지 못하는 군중을 향한 말씀입니다.

이들이 영의 눈이 열려 참 눈을 지녔다면

빵은 바로 영원한 생명의 표징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현세의 것들에 집착하여 노예 되어 살다보니

이정표와 표징이 가리키는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고

어둠 중에 방황하는 지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준다.”

 


바로 이의 모범이 사도행전의 스테파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았던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였기에

그 누구도 그를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체험을 통해

내적변화와 치유요 참 눈을 지니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삶 역시 늘 자유롭고 단순하고 새롭고 아름답습니다.

다음 군중과 주님과의 문답 내용도 의미심장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라 합니다.

이래서 우리 수도승들은

믿음의 표현인 ‘하느님의 일(Ous Dei)’ 성무일도를 끊임없이 바칩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믿음의 수행들 모두가 하느님의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참 좋은 삶의 이정표이자 표징인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참 눈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당신 말씀과 성체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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