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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4 조회수1,047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4월 24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will never hunger,
and whoever believes in me will never thirst.
(Jn.6,35)



제1독서 사도행전 7,51─8,1ㄱ
복음 요한 6,30ㄴ-35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으니까 5~6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 저희 집은 8식구가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였지요. 그러다보니 먹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의 누님이 어머니에게 무엇인가를 받아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나에게만 먹을 것을 주는 어머니에 대해 너무나 서운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몰래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병 속에 든 것을 몇 개씩 빼 먹었습니다. 솔직히 쓰기만 하고 맛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나만 먹고 있다는 것이 억울해서 몰래 훔쳐 먹었던 것이었지요.

며칠 뒤, 고열과 함께 경기를 심하게 하면서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요. 누님만 먹고 있었던 것은 감기약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약 때문에 아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몰래 훔쳐 먹었다는 사실에 혼날까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저의 누님에게 약은 분명히 건강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누님의 이 약은 건강을 오히려 잃게 해주는 것이었지요. 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지만, 똑같은 약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 봉투에는 꼭 ‘처방전’과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처방전과 주의사항을 잘 보고 여기에 맞게 약을 사용해야 하겠지요.

예수님께서도 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렇다면 그냥 무조건 받아 모신다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떤 본당신부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성체를 모시는데 갓난아기인 자기 손자가 생각나더랍니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몸을 모시면 손자에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자기가 받은 성체를 살짝 쪼개어 손자에게 조금씩 먹였다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렇게 성체를 모신 어린 손자에게 정말로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은 믿음 없이는 참된 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믿음을 간직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생명의 빵을 내 안에 온전히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주님의 몸을 온전하게 모실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처방전과 주의사항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을 온전히 받아 모시기 위해 죄 중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고해성사도 보는 것입니다.

영원히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하는 주님의 몸. 이 주님의 몸을 모시기 위한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생각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거북이는 물속을 여기저기 헤엄쳐 돌아다니지만 그 마음은 알을 낳아 둔 곳에 있다(라마크리슈나).


아름다운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나의 인내심은?
 

어떤 사진관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관에는 아주 오래된 사진기가 있다고 합니다. 비록 오래된 사진기이지만 너무나 성능이 뛰어나서 요즘의 사진기보다도 더 훌륭한 사진들을 만들어냈지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사진관을 찾아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관의 사장은 이렇게 말해요.

“이 사진기는 너무나 오래된 사진기라 요즘 사진기와 좀 다릅니다. 즉, 노출시간이 10분이나 되기 때문에, 10분 동안을 정지한 상태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사진을 찍은 것이잖아요. 옛날 사람들도 10분 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우리가 그걸 못하겠어요? 멋진 사진이 나올 수 있다는데,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 찍어주세요.”

하지만 이 옛날 사진기 앞에서 10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긴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해 보십시오. 가장 편안하다는 자세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가장 편안하다는 자세가 가장 불편한 자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옛날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그만큼 인내심이 없어진 요즘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인내심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불평불만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나의 인내심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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