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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식의 입에 좋은 것을 넣어주다 [사랑 성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7 조회수503 추천수0 반대(0) 신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요한 6,52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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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이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자기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유다인들이라고 하면 율법 아래에 있다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의 정신 보다는 율법의 형식에 얽매인 '율법주의'에 속박되어 있는 이들이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 같으면 게시자의 표현에 따라 '성전주의'이다 할 것입니다. '성전주의' 라는 것도 '율법주의'와 마찬가지로 성전중심 생활의 내면 보다는 성전중심 생활의 형식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다 하겠습니다.

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예수님의 말씀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육적인 형식에 얽매이면 영적인 내면'에 대하여서는 언제나 의문에 갇히는 법입니다. 컵에 물이 가득 담겨 있으면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나 '성전주의'는 자신들의 말대로 결코 예수님의 '살'을 먹을 수 없습니다. 형식에 결박되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단지 입으로 먹고 밖으로 나오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살'에 대하여 아마도 당시의 유다인들에게는 아직 눈이 열리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현대의 사람들 역시 눈이 열리지 않았다 해도 가히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싶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사랑의 살과 피'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양식은 먹어야 생명이 되지만 하느님에게 양식은 주어야 생명이 된다고 상호 대비해서 표현하고자 합니다. '사랑'은 먹기 보다는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분명히 사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도 역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을 부모가 자기 입에 넣기 보다는 자식들의 입에다 넣어 주는 것이 더욱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이로써 부모의 사랑은 자식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때의 '사랑 마음'은 부모의 자기 살과 피를 자식들에게 먹이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유다인들도 이런 부모의 '사랑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바로 '사랑의 살과 피'이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이렇게 인간에게 보여주셨습니다.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현대의 사람들도 유다인들과 다를 바가 없이 "자신을 내어 주는" 이 사랑에 대하여 깨닫지 못합니다.

'율법주의'가 율법의 형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과 같이 현대의 '성전주의'도 성전중심의 형식에 속박되어 <도>를 닦을 뿐입니다. 마치 불교의 도승처럼 그리스도교의 도승이 되려고 아니 율법학자, 혹은 바리사이들이 되려고 <자기 버림의 도승>이 되고자 애씁니다.

'자기 버림'이 이루어져서 '자기 내어 주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도승>에 불과합니다. 결코 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끝내는 자기를 내어 주지 못합니다. 자기 버림은 자신을 내어 주는 일을 실행(시작)할 때에 비로소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내어 줄때 버릴 수 있다 할 것입니다. 내어 주지도 못하면서 자기를 버리고자 한다면 거짓말쟁이입니다 

자식의 입에 좋은 것을 <내어 주는 사랑>이 자기 입에 좋은 것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입에만 좋은 것을 먹고 자식의 입에는 좋은 것을 주지 못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사랑의 살과 피'다는 것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술을 마시는 일(성전 다니는 일)은 있어도 남들에게 베푸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버리겠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에 불과하다 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도 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 대중에게 해 준다는 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다수에게 해 준 것이 있다면 이 세상은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도 <자신을 내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입으로만 소리치는 세상입니다. 

'성전주의자'들은 특히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께서 바로 성전이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돌로 된 성전 중심'에 있듯이 '살로 된 사람 중심'에 있도록 마음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예수님과 일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세상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해서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 마음을 빨리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기 버림'의 도승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되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오신부님)
이로써 자기 버림의 자기 없슴에 도달하고 마침내 예수님과 일치하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이 됩니다" (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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