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의 삶은 날마다 지금 여기서 - 4.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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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04-28 | 조회수38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2.4.28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사도9,31-42 요한6,6-69
이건 믿는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지금 여기서 ‘부활의 꽃’으로 활짝 피어 살라고 촉구하십니다.
사람도 사람대로 다 예쁘다 -
이렇게 ‘나는 나대로’ 살아야 자존감 높은 삶입니다. 자존감 높은 부활의 삶을 살 때 참 행복과 기쁨입니다.
건강한 심신으로 살게 하는 자존감 높은 부활의 삶입니다.
‘나자로입니다.’ 라는 단순 소박한 대답이 참 신선했습니다. 수사님의 꾸밈없는 겸손한 모습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늘 기쁘게, 부지런히,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수사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 덕분에 넉넉하고 편안하고 초연하게 자존감 높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대하면 마음은 저절로 밝아집니다.
지금 학교는 공부을 잘하든 못하든 자존감을 갖지 힘든 구조다. 우월감을 가질지 모르지만, 자존감은 없는 상태다. 못하는 애들은 못하는 대로 잘하는 애들은 잘하는 대로 열등감 아니면, 우월감만 있다.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10대의 꽃다운 시절을 잘 사는 아이들이 없다. 자기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폭력성이 나오는 것이다.-
아닙니다. 대부분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만 먹었지 자존감 없으면 내면은 전혀 성장하지 못한 초중등 학생입니다.
민들레를 찾는 아이 가운데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21살의 친구가 있는데 학교에 짓눌린 흔적이 전혀 없다. ‘자존감이란 저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친구다. 그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부모님의 교육철학이 정말 단순하다. 그 친구 어머니는 “아이한테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준 것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이면 자기 역할은 충분한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성스러운 밥상을 받아 본 아이는 자기를 존중할 줄 알 것이라는 얘기다. -
사랑을 받으면서 자기를 조금씩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게 치유인 것이다. 결국은 사랑이다.-
일상의 진정성 담긴 사랑이 자존감 높은 사람을 만듭니다.
자존감은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이다. 우리 사회는 자존감이 바닥이고, 사회구조가 성적, 외모, 재산으로 자존심난 세우게 되어있다. 그런 자존심조차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몰리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하며 증오심이 쌓이고, 이 증오심이 아주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그냥 싸움을 한 친구는 이기든 지든 간에
참 행복한 삶도 자존감에 달렸음을 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주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이게 참 사랑의 표현입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부활하여 일어난 애네아스와 타비타요 바로 이게 구원입니다.
애네아스와 타비타입니다.
넘어지더라도 좌절감에서, 열등감에서 훌쩍 일어나 자존감 높은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의 자존감 높은 부활의 삶의 비결이 복음에서 환히 들어납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존감 높은 부활의 삶을 살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말씀을 통해 이뤄집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연유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있고,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실현되는 자존감 높은 부활의 삶입니다.
당신 말씀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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