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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신비여 - 03 특권의식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9 조회수426 추천수1 반대(0) 신고
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4. 하느님의 위대한 목소리, 소명

03 특권의식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소 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부르심을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을 지름길로 사는 길입니다. 성소가 확실하게 식 별되면 성소에 응답하면서 사는 것이 은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왕 도입니다. 설사 그 길이 힘들고 어렵고 두렵더라도 말입니다. 성소는 우리가 일생 동안 살아가야 할 소명(召命)과 비슷하지만 근 본적으로 소명이나 사명과는 다릅니다. 소명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지침입니다. 그러나 성소는 지속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 를 유지하면서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에 기쁨 이 있고 비전이 있다면, 그 길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거룩한 부르 심, 곧 성소인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만의 성소를 받았 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게도 내 인생을 일관된 신념으로 관통하면서 강력한 힘으로 이 끌어온 성소가 있습니다. 지난 66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고 사 제생활을 계속해왔던 것도 이 성소를 통해서 부어 주신 하느님의 사 랑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밭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그러나 아주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당시 우리 본당에는 신학생도 없었고 본당 출신 사제도 없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내게 성소에 대 해 말한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신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 니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군가 내 양말을 빨아놓기도 하 고, 예쁜 꽃을 수놓은 손수건을 몰래 선물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마 같은 동네 여학생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왜 그렇 게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또래의 친구들은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도 하고 이성 친구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하는데 나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사춘기의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교 2학년 때 우리 반 남학생과 다른 학교 여학생이 무기 정학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청암사'에 같이 놀러 가서 암자에서 밤새도록 놀았는데, 나중에 방구들이 꺼진 것을 알고 스님이 학교에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고 성당에 갈 시간도 부족한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성소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었기 때 문에 주님이 주신 성소인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내 마음 을 쓸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대구 대교구 최덕홍 주교님이 성소 면담할 때 "학교 공부는 반에서 중간 정도면 좋겠네. 이렇게 잘할 필요는 없는데, 무엇보다 건강을 중시해야 해." 하고 말씀하실 정도로 나는 사제가 되려면 공 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교 시절에는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부모님이 걱정하실 정도였는데 덕분에 반에서 5등 아래로 떨어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았고 토요일엔 친구들을 데 리고 성당에 가서 놀거나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것이 내 중요한 일과 였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때는 교육감이 수여하는 모범학생 표창장 도 받았습니다. 어떤 힘이 저를 이렇게 살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인간적인 힘과 노력의 결과는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소를 실현하는 단계의 은총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내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느꼈습 니다. 그런데 별과와 철학과를 마치고 신학과에 들어가면서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신학과에 들어가기 전 삭발례라고 하는 예식이 있는 데, 세속을 떠나 성직자 대열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조금 깍 고 성직자 복장인 수단을 입혀줍니다. 그러면 소성직자(小聖職者) 가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상당히 오래전 부터 삭발례 대상자를 한 명씩 붙잡아서 엎어놓고 때리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성인 호칭 기도를 외우게 하면서 볼기를 때리기도 합 니다. 성직자가 되면 구타(물리적, 정신적)를 당하지 않는 교회 규 정이 있어서, 비록 잘못했다 하더라도 공개적이고 굴욕적인 구타 를 당하지 않기에 마지막으로 때려준다는 좋지 못한 전통이었습니 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도 소원했던 성직자 복장인 수단 을 입고 자랑스럽고 가슴 벅찬 신학과 생활 1년을 지냈습니다. 그 런데 그런 내가 변해갔습니다. 기도와 신학 공부와 고해성사에 대 해 흥미와 성실성을 잃어갔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서 내 삶 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사제가 되고 난 뒤에도 10여 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이유를 깨닫 게 되었습니다. 소위, 성직자 특권의식이 내 안에 가득 찼던 것입니 다. 이것 때문에 나의 초기 사제생활은 꽉 막힌 수도관처럼 하느님 과 사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독약인지,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 나 어려운지를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몸서리가 쳐질 정도입니다. 봉 사와 섬김의 순수한 성직자 직분을 오히려 우월적인 특수한 신분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내 눈에 보이는 교계제도, 그 안의 계급적 인 현실, 거기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어리석 게도 내 성소를 가로막는 왜곡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병들어갔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많은 삶의 굴곡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사제가 된 후 15년 동안이나 갈등과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해 방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제2의 사제성소를 살 수 있었습니다. 나 의 제2의 사제성소는 이전에 깨닫지 못한 사제의 길을 걷게 해주었 고 이 성소때문에 받은 축복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과 일치해 서 사는 삶이 쉬워졌고 사제의 길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으며 오 늘의 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당신의 아들 딸, 하늘나라의 상속자, 백성으로 불러주신 축복에 감 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 는 동안 우리 각자에게 성소를 주셨습니다. 살아가면서 자기가 있 는 자리, 맡은 소명, 해야 할 사명이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내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갔을 때, "세상에 있을 때, 이런 일을 하라고 해서 제가 이 일을 하고 왔습니다." 하고 떳떳하 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의 성소인 것입니다. "당신이 맡기신 일을 했고 그 길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러나 실패도 했고 잘 따르 지는 못했지만 당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 게 말하는 것이 성소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성소가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 니다. 한 번쯤 조용히 내 성소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습 니다. 나의 성소 발견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왕도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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