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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삯꾼 봉사, 착한 봉사 [성소로 들어간 이리]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9 조회수308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요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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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경우는 여기에서는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고 봅니다.양치기가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누군가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는 것만큼 완전한 헌신은 보기가 참으로 드물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대중들을 위하여 입소리는 크게 내더라도 선뜻 자신을 내어 주지 못합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놓지 못합니다.이같은 자신의 '완전한 헌신'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을까요. 여러 근거를 말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착한 목자다"에 주목합니다.

'착한(선한) 목자'에서의 '착한 마음'이 '완전한 헌신'의 근원이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것이 예수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착한 마음이 바탕되지 않으면 남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헌신하지 못할 것입니다.

'착한 마음'은 순수한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찌꺼기'가 사람의 정신과 마음 속에 차있을 때 순수할 수 없습니다. 가식과 위선이 그 얼굴과 입술 그리고 행동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습니다. 이들은 남들에게서 '형님'이라든가 '선생님'이라던가 하는 호칭을 듣는 일에 맛들여져 있습니다.

자신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대접받으려는 속내가 그대로 겉으로 드러납니다.입술로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남들에게 가르치면서도 결국 자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대접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자신을 버린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뻔한 이치가 됩니다. 겉으로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은 '착한 마음'이 자기 내면에 근원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양치기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착한 양치기들 속에 있는 삯꾼들과 다름 없습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리'는 양들을 해치는 사람이기도 하고, 양들을 해치는 정신의식 및 거짓된 왜곡 등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흔히 어떤 양치기가 다른 양치기의 행동을 보면서 잘 질책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자 애쓰고, 주위로부터 공손하게 대접받으려 하는 '열등의식'의 양치기들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자신을 존중할 줄을 모른다며 병적인 상태에 놓인 양치기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남들로부터 그렇게 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남을 대접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그같은 습성이 바로 '삯꾼의 식성'이다 할 것입니다.남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자기 머리결로 부드럽게 닦아 주는 양치기가 상대방에게는 '착한 목자'가 되어 집니다.

'사랑의 기본'을 부정하며 다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삯꾼들이 흔히 내뱉는 말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 하나도 사랑할 수 있는 '착한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다수에게 참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흑심을 품고 양들에게 접근하는 '이리'다 할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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