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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전례, 파스카 신비의 거행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6 조회수7,819 추천수0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전례, 파스카 신비의 거행

 

 

나를 기억하여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로마 미사 통상문」; 1코린 11,24.25).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끝에 사도들에게 하신 명령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분을 기억하여 성찬례를 거행하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고 부활을 선포”(「로마 미사 통상문」)하는 이 특별한 만찬 예식의 핵심은 ‘기억’이란 말에 있다. 히브리말 ‘지카론’(zikkaron)을 번역한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파스카 만찬에서 행하던 예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동체가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리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계약에 충실할 의무를 마음에 새기던 행위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을 기억하여 만찬을 거행하라고 하신 것도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예식을 거행하라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당신의 죽음이 세상을 구원하는 새로운 파스카 사건이었음을 믿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로마 미사 통상문」)에 희망을 두면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건너가”(요한 13,1)고자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분을 기억하여 파스카 만찬, 곧 성찬례를 계속해서 거행하는 이유이다.

 

 

말씀 선포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기억하는 ‘기념제’에서 필수 요소는 말씀 전례이다. 독서에서 듣게 되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난날에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게 하고 ‘오늘’ 이루실 일을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그냥 다시 하늘로 돌아가지 않고, 땅을 적셔 싹을 돋아나게 하듯 하느님의 말씀도 그러하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나온 새로운 전례서들이 말씀 전례를 풍성하게 마련해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억’이 없으면, 전례는 은총을 얻게 해 주는 일종의 마술 행위로 여겨진다.

 

따라서 간단하게라도 말씀 전례가 없는 전례 거행이나 성사 집전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어떤 전례 거행이든 독서에서 먼저 하느님의 구세사를 귀로 듣고, 이어서 성사의 표지를 통해 그 구세사를 눈으로 보며, 거기에 자신이 몸과 마음으로 참여할 때, 구원이 바로 ‘오늘’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신비의 표징들

 

세례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성사들을 통해 날마다 건설된다. 「어른 입교 예식」 그리스도교 입문 총지침 6항에서 말하듯, “세례를 받는 사람이 죄의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것은 세례로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교회의 모든 성사 거행이 성령의 활동으로 유효한 능력을 지니는 것도 그리스도의 파스카 희생에서 구원의 능력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성사와 모든 그리스도교 전례의 의미와 내용을 요약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의 감사송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 저희를 위하여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나이다.”

 

 

찬미와 감사

 

오순절에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려온 이래, 교회는 모여서 파스카 신비를 거행해 오고 있다. 성경 말씀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계시 헌장, 21항) 듣고, 성체성사와 여러 다른 성사들을 거행하며,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운 선물에 대해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

 

성사는 감각적인 표징들, 곧 물로 씻음, 향유를 바름, 만찬, 죄 고백, 안수, 혼인 서약 같은 상징적인 행위들을 통해 드러나지만, 교회의 이러한 행위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 행위가 이어진다는 믿음이 없다면 성사의 열매도 보증될 수 없다. 모든 전례 기도문이 언제나 파스카 신비를 먼저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구원 행위의 정점을 찍으신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찬미하며, 감사를 드리는 바로 거기서 은총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고해성사 때 사제가 바치는 사죄경 또한 파스카 신비를 바탕으로 죄 사함의 성령을 받는다는 믿음을 표현한다.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를 통하여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감사 기도 제2양식).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요한 17,22 참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되는 일치를 토대로, “각 교회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성찬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나며, 또 공동 집전을 통하여 교회 일치가”(일치 교령, 15항) 이루어진다.

 

유다인들이 파스카 예식을 거행하며 메시아를 기다린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주님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며 파스카 예식을 거행한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할 때까지”(전례 헌장, 2항)그리스도를 기억하여,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 헌장, 10항)이 된다. 왜냐하면 전례가 언제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기 때문이요, 파스카 신비의 거행인 전례야말로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전례 헌장, 2항)하기 때문이다.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2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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