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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인과 아벨[7]/위대한 인간의 탄생[30]/창세기[4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30 조회수380 추천수1 반대(0) 신고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그 둘의 제사보다도 그것에 드러난 카인의 사람 됨됨이이다.
카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는 하느님을 향하여 분노하고
그 분노를 자신의 얼굴표정으로 하느님께 드러내었다.
이것이 카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창세 4,5]’

왜 그는 심하게 화를 내었을까?
평소에 하느님께 대한 감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얼굴을 떨어뜨리는 모습은 흡사 우리의 모습이다.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버티면서 우겨댄 게 우리 아닌가?
그냥 마음 편하게 양보하면 그만인 걸,
끝내 못 참고 우기면서 기어코 감정싸움으로 번져
타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킨 장본인이 우리 아닐까?
그리하여 목에 힘주면서 땅이 패일정도로 쬐려보며
시끌버끌 신음하며 울분을 토한 우리의 엊그제 모습이다.

카인이 지금 딱 그 꼴이다.
이미 그는 아담과 하와의 눈 밖에 난 큰아들[長子]이었다.
동생이 잘되는 그 꼴을 차마 못보고
불평불만이 그를 이 지경 이 꼬락서니로 만들었을 것이다. 
 

가끔 우리는 자기의 등을 굽은 것을 망각한 채
그림자보고 굽었다고 발길질하다 기부스[Gips] 한 사람을 쾌나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스스로가 ‘마치 뭐뭐 인 것처럼’여겨 헝클어진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가만히 버리면 그만인 것을 자기 것인 양 하다 몰매 맞은 경우,
없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것이 빤한 것도
결국 자기 것이 되질 못하고 남의 것으로 된 것인 넘넘 많다.
못된 이기심 때문이리라.
자기 맘만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입은 피해사례이다.

카인이 그 모양이다.
하느님께서 동생과 동생 것만 받아주는 것을
그냥 좋게 생각하면 그게 그저 다 좋은 것이다.
다음에는 분명히 ‘내 차례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여유있게
한번 그 이유를 곰씹었다면 정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별것 아닌 것을 말이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5]
하느님도 그 꼴을 보고는 차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나 보다.
자기 분에 못 이겨 눈깔을 위아래 이리저리 굴리면서 쬐려대는 그러한 카인에게
그분께서는 경고하셨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자세를 바꾸기만 해도
하느님의 자비가 아벨에게서 카인에게로 옮겨갈 것이리라.
아벨의 믿음에 반 푼어치만 더 보태도
장자의 상속권도 그분의 은총을 담뿍 받았으리라.

그러나 카인의 마음은 이미 부모님과 하느님의 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참으시는 분인지를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바다.

하느님도 이제 더 눈감고 봐 주기에는 신물이 난 모양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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