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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신비여 - 01 길천 성당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04 조회수498 추천수5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6. 함께 멀리 가는 이정표, 공동체

01 길천 성당
내 사제 생활의 마지막 본당은 길천 성당이었습니 다. 동래 성당을 떠나기 전 나는 주교님을 찾아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 니다. "제가 은퇴할 나이도 됐으니 부산 교구에서 사목 환경이 가장 열악 한 본당에서 사목하다가 은퇘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주교님은 과연 그런 곳에서 사목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 습니다. 연로한 사제가 지내기에는 열악한 환경이었던가 봅니다. 그 래서 나는 예수님 당시의 상황보다 더 나쁘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부임할 뜻을 밝혔습니다. 2005년부터 1년 남짓 몸담았던 길천 성당은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바닷가 성당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성당입니다. 주 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가 많으면 80명, 평균 60명 정도였습니다. 얼 핏 보면 갈릴레아 호수를 닮은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 이 작은 성 당은 마을회관으로 사용하던 30평 크기의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대지 가 36평이었지만 제의방의 일부는 남의 땅이었습니다. 사무실과 회 합실도 임대건물을 쓰고 있었고 사제관도 통술집을 개조한 곳에 전 세 들어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제관은 방에 곰팡이가 피 었고 밤에는 쥐들이 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화장실도 바깥에 있어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첫 식복사가 3일 만에 떠나가고 다른 이들 도 한두 달 만에 그만두고 가버렸습니다. 얼마 후 본당 회장님이 셋방 을 얻어주어 3개월 동안 살았는데 집주인인 노부부, 바깥채의 사제관, 할머니 한 분, 그리고 청년이 세 들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10시쯤 사목회의를 마치고 수단을 입고 집에 돌아왔습니 다. 놀러 왔던 이웃집 할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라면서 "너, 누 구냐!"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주인 할머니가 얼른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네." 라고. 방에 들어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이 세상에 세 들어 사는 나그네구나. 인생 길에 잠시 머물다 가는 셋방살이 떠돌이구나.' 마음이 왠지 서글 퍼졌습니다. 저녁기도를 하고 나자 많은 생각이 떠올랏습니다. IMF 이후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생각났습니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작 은 집에서 셋방으로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의 눈물과 슬픔을 비로소 실 감할 수 있었습니다. 셋방살이하는 신자들의 서러움과 고통을 내가 얼 마나 함께 나누며 사목생활을 해온 것이 아닌가 반문해보았습니다. 하루는 부슬비가 내리는 길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노래를 흥얼거 리며 걷던 50대 남자가 나를 힐끔힐끔 노려보더니 내 뒤통수에 대고 욕을 했습니다. "성당을 지으려면 좀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지, 쪼그 만 날림집 하나 지어놓고 하느님 집이라꼬? 빌어먹을 인간들, 참 안됐 다. 성당은 쪼그만 한데 웬 커다란 신부가 와서 참 꼴 사납구만." 사제관에서 성당까지 가는 길에 다방이 다섯 개 있습니다. 그 길을 나는 수단을 입고 다녀야 합니다. 어느 날 다방 여주인이 나를 보더니 푸념조로 들으라는 듯 말했습니다. "여기도 장사 다 틀렸네,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하니 정말 재수 없어서." 내가 축 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훼방꾼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게 분명했습 니다. 몇 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한 신자의 주선 으로 노동현장에서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낡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 는 노인 한 분을 뒤따라갔습니다. 움막 같은 그의 판잣집에서 옷을 갈 아입고 나온 그는 손때 묻은 손가방을 들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어디 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20여 명의 신자들이 모인 작고 초라한 방이었습니다. 그분은 견진성사를 집전하고는 국수 한 그릇을 드시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분이 '중국 지하 교회의 주교님'이라는 사실을 안 나는 충격을 받 앗습니다. 온몸에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바로 이곳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중국의 가톨릭교회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 가운데 사시면서 가난의 행복을 얘기하고 가난하게 세상을 떠나 신 예수님을 종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만났습니다. 참으로 특별 한 은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는 어느새 세상의 가치와 사회의 제도가 너 무 깊이 뿌리박고 정착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소위 기득권을 포기하고 열악한 본당으로 간 나를 안타까워하는 선후배 사 제들의 얘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 교회 안에 팽배해 있는 계급의 식, 물질적 가치관에 놀랐습니다. 또 교계 인사제도의 현황을 돌아보 며 많은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는 사제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제도적인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 라보게 됐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말과 생각만큼 쉽지 않 았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내가 가 난한 어촌에 산다는 사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소위 세상적인 기득권이라는 것과 인간적인 욕심을 포기하고 가난한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진정 '예수님과 함께'가 아니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큰 사랑이 없이는 그들을 아끼고 섬기면서 기쁘게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모든 영광을 버리고 우리의 고통을 아파하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위해 낮고 비천한 몸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 이나마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길천 성당에서 기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이 나로 하여금 예수님의 강생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면서 성탄을 준비하게끔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래 서 그해, 길천 성당에서의 성탄축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일생에 가장 거룩하고 은혜로운 성탄대축일이었습니다. 낮은 곳으로 오셔서 인간의 고귀한 품위를 고양시키시는 강생의 신 비의 놀라움이여!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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