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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신비여 - 04 거제 본당에서의 3개월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07 조회수431 추천수4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신앙의 신비여
사제 생활 50년의 단상

왕영수 신부 지음

6. 함께 멀리 가는 이정표, 공동체

04 거제 본당에서의 3개월
"새로 부임한 본당 신부는 나 같은 냉담자도 일일 이 잘 챙겨주는구만!" "성탄 찰고(察考)도 없고 교무금도 따지지 않고 고해성사를 준다는 데 ---." "KBS 한국방송의 <한밤의 메아리> 방송을 하던 유명한 신부님인 데 이곳에 오래 계실까요?" 내가 1971년 거제도의 거제 성당에 부임한 것은 12월 중순이었습 니다. 교구의 여러 사정 때문에 인사이동이 늦어졌고, 따라서 성탄을 준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3개의 공소에도 가야 하고, 600명이 넘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어서 본당의 전체 교우들 에게 부임인사 편지를 일일이 보냈는데 그 내용 때문에 위와 같은 이 야기들이 신자들 사이에서 오고 간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그해 성탄미사는 그야말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수적으 로는 평년보다 무려 두 배가 넘는 교우들이 참가하였고 내적으로도 모든 신자들이 기뻐하면서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커다란 축제가 되 었습니다. 그래서 교무금이나 대축일 헌금이 놀랍게도 다른 때보다도 더 많이 봉헌되었습니다. 가족들을 모아놓고 찰고도 하지 않았으며 교무금 독촉도 하지 않았 고 내년의 교무금 책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저의 부임인사 편지 하나 때문에 성탄미사가 명실 공히 축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헌금을 자진해서 기쁘게 봉헌하였으며 생기 있는 본당 공동체로 활성화된 것은 내 사목생활 가운데 커다란 감동으로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비가 내리면 언제나 질퍽거리던 성당 입구까지의 길 을 시멘트로 말끔하게 포장했고 제단의 제대도 아름답게 수리 - 정돈 했습니다. 헌금이 신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신자들은 모두 기뻐했고 그 보람 때문에 더 많은 헌금과 교무금이 봉 헌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에 나는 무려 20여 건의 혼인성사와 일반 혼례식 을 집전했습니다. 추수철이 지나고 여유 자금이 있을 때 자식들의 혼 사를 치르는 농촌 풍속 때문이기도 했고, 나의 방송 유명세(?) 때문에 외인들의 혼례주례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주례 수입도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돈으로 대형 TV를 구입해서 사제관에 설치했습니다. 그 당시 재미있는 드라 마가 저녁 시간에 방영되었는데 아마도 내가 가진 TV가 그 동네에 서는 유일한 TV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이 내 방에 와서 영화 보 듯이 재미있게 TV를 시청했습니다. 나중에는 믿지 않는 학생들까지 와서 3, 40명이나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은 좋은 부모님을 둔 것 같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 인 것 같구나. 신부님 방에 들어올 때마다 늘 공손하게 인사를 잘하는 것을 보니 ---." 하루는 TV 드라마가 끝나고 학생들이 귀가하기 전에 한 학생을 세 워두고 공개적으로 칭찬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더 바빠지게 되었습니다. 40명으로부터 마흔 번이나 일일이 인사를 받 느라 오히려 곤욕을 치를 정도였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마을 사람들로부터 자녀교육을 잘 시켜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길에서 동네 어 른들을 만나면 인사를 공손히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새 동네에 따뜻한 인정이 넘치고 어른들을 잘 섬기는 모범적인 동네로 바뀌어져 갔습니다. 거제도의 율포 공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은 비록 가난한 어 촌마을이었지만 그분들의 마음과 신앙만은 부자들보다 더 풍성한 모 범적인 신앙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신자들을 내 가족처럼 돌보시는 성인(聖人)과 같은 공소의 회 장님. 그분은 본당 신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 이틀 전부터 생업 을 중단하면서까지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당일에는 부두까지 나오셔서 마치 나를 예수님처럼 반갑게 영접했고 공소에 가서는 나를 아랫목에 앉혀두고 큰절을 했습니다. 내 큰 형님뻘 되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공손하게 대하는 모 습을 보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분 한 분씩 돌아가면서 큰절을 했는 데 나중에는 내가 허리가 아파서 혼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 습니다. 더욱이 연세가 많으시고 몸이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회 장님이 직접 업어서 공소에 모셔오는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한 폭 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기만 합니다. 비록 1박 2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참으로 오랜만 에 '사람 냄새'를 마음껏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부산에서 사람 으로부터 돈 냄새나 권력 냄새를 맡고 길들여진 내게는 그야말로 신 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이 지금도 눈앞 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멋있는 신앙 공동체도 있다는 사실에 뜨거운 감동 을 받았습니다. 성인 같은 회장님은 그 동네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발 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장님의 인간적이고도 헌신적인 봉사에 서 오는 하느님의 선물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앞으로 내 사제생활도 공소 회장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회장님의 나룻배를 타고 가배 공소에 갔습니다. 조그마한 부두 가 다가올수록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마치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동네 어른들이 손을 흔들면서 정말 반 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 "신부님, 참 잘 오셨습니다. 신부님이 오시는 날은 우리 동네의 큰 잔칫날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고유한 음식인 호박시루떡도 정성스럽 게 마련했는데, 어제 저녁에는 몇 년 만에 5, 60근이나 되는 커다란 멧돼지가 공소 뒷산에서 잡혔습니다. 천주님께서 주신 이 멧돼지와 막걸리까지 준비해서 잔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박 2일의 가배 공소 일정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추억 거리가 많습니다. 그 공소에서 임진왜란 때 만들어졌다는 교적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야말로 너무나 행복한 순례였습니다. 이렇게도 오염되지 않은 신앙 공동체를 사제생활 초기에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의 섭리가, 사제생활 노년에도 다시 한 번 이어지기를 간 절히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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