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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기쁨 - 5.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5-17 조회수437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2.5.17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사도18,1-8 요한16,16-20

 

 

 

 

 




참 기쁨

 

 

 

 


항구한 정주의 열매가 기쁨과 평화입니다.

항구히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정주할 때

주님 주시는 관상의 열매가 내적 기쁨과 평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리 마음 속 깊이에서 샘솟는

이런 참 평화와 기쁨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요즘 1독서의 사도행전에서

개종 후의 바오로를 통해서 새삼스럽게 깨닫는 진리입니다.


정말 사서 하는 고생 같습니다.

저 역시 수도원 입회 때

‘이제 살만하니까 왜 어려운 고생길의 수도원에 들어 가냐’고 만류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좋은 조건을 다 갖춘 바오로였기에

세속의 삶을 살았더라도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렸을 텐데

사람 눈으로 볼 때 개종 후의 바오로의 처지는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스승보다 위에 있는 제자가 없다고

스승 예수님을 닮아 끊임없는 박해와 멸시 조롱 중에 떠돌이 삶입니다.


천막 짓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는 사도 바오로,

사람 눈으로 볼 때는 완전 실패 인생입니다.

 


우리 수도자 역시 세상눈으로 볼 때 별 볼 일없는 인생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전파에만 전념했다’는 데 비밀의 열쇠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린 정주의 삶에서 샘솟는

내적평화와 기쁨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활력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바오로에게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빼버린 삶이라면

말 그대로 참 공허하고 비참한 삶이었을 것입니다.



다음 대문호 괴테의 고백이, 시편저자의 고백이 공감이 갑니다.

하느님 빠진 삶의 허무에 대한 고백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삶은

  힘들게 노력하고 일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네.

  75년간의 내 생애에서 단 한 달이라도 진정 즐거웠던 때가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걸세.

  그것은 바위를 끊임없이 굴리면서 계속해서 밀어 올리려는 시도였네.”

 

 

 


하느님 없이도 최선의 노력을 다한 삶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고백이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되지만

기쁨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시편90,10).

 

 


믿음의 유무를 떠나서 누구나의 실존적 체험이라 공감이 갑니다.

이 말씀 역시 기쁨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샘솟는 참 기쁨과 평화입니다.

주님의 장엄한 약속이 실현되어 우리는 이미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이미 이 기쁨을 앞당겨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바오로를 위시한 모든 성인들이 주님 부활의 기쁨을 앞당겨 살았습니다.


이런 내적 기쁨의 소재에 대해 히브리서와 성규가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약속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지상에서는

  자기들이 타향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히브11,13)

 

 

 


믿는 이들만이 앞당겨 누릴 수 있는 참 기쁨을

성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사순 시기는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기쁨이요,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향을 앞 둔 기쁨이

바로 사막인생을 낙원인생으로 바꿉니다.


최근에 읽은 우리의 존경하는 선배 수도사제 진토마스 신부님의 고백이

아름다워 길다 싶지만 다 인용합니다.

 

 

 



-보수적 기질을 가진 나에게는

이동하는 것이(선교 파견만 예외) 언제나 어려웠다.

특히 오래된 나무를 옮겨 심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은 작은 공동체의 분위기 속에서 고령을 즐기며 산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원장 신부는 내가 한국에 도착한 해에 태어났고

다른 네 형제는 더욱 어리다.

여기서 내가 특별히 즐기는 것은 내 방에서 보이는 경치다.

내 경험으로 사십이 넘어서부터 세상이 계속 아름다워졌다.

다시 말하면 미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는 것이다.

강산이 더 화려하게 눈에 들어오고 음악(새소리 포함!)이 더 곱게 들린다.

동시에 더 큰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기대가 늘어난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자체이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전조와 약속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내가 금년에 80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제 멀지 않았다.’는 좋은 예감이 온다.

독일어에는 Vorfreude 라는 말이 있는데

‘좋은 일을 예상하여 미리 맛보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지금 나는 가끔 그런 흐뭇함을 느낀다.-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우리의 숨겨진 보물 샘이요

여기로부터 샘솟는 참 기쁨입니다.



천상의 행복을 앞당겨 귀향의 여정을 기쁘게 사시는 노(老)신부님이요

또 이렇게 사셨던 성인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참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시어

당신의 평화와 기쁨의 사도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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